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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황폐…박멸…” 취임사에 거친말 쏟아낸 트럼프

“살육…황폐…박멸…” 취임사에 거친말 쏟아낸 트럼프

Posted January. 23, 2017 07:12,   

Updated January. 23, 2017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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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대통령 취임사라고? 그냥 지난해 대선 유세 아닌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취임사를 마치자, 비교적 트럼프에 우호적인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트럼프는 16분간의 짧은 취임사 내내 미 현대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전대미문의 직설 화법을 쏟아 냈다.

 미국인들이 가장 충격을 받은 대목은 미국의 현 상황을 ‘살육(carnage)’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도심의 엄마와 아이들은 가난에 갇혀 있다. 녹슨 공장은 이 나라 곳곳에 묘비처럼 흩어져 있다. (중략) 미국에 대한 살육은 지금 당장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임기 중 협력의 대상인 워싱턴 정치권을 향해서는 국민이 누려야 할 것을 빼앗아 거둬 간(reap)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바로 앞에 공화 민주당 소속 의원 수백 명을 앉혀 두고서다.

 “너무나 오랫동안 워싱턴의 소수 그룹이 정부가 주는 보상을 거둬 갔지만 국민은 그 비용을 떠안았다. 워싱턴은 번창했다. 그러나 국민은 그 부를 나누지 못했다.”

 그 후에도 희망보다는 ‘황폐(disrepair)’ ‘쇠퇴(decay)’ ‘상실(dissipate)’ 등 디스토피아적 어휘가 계속 등장했다. 이슬람국가(IS)에 대해서는 ‘박멸하겠다(eradicate)’라는 표현을 썼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IS에 대해 ‘분쇄하겠다(degrade)’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해 왔다.

 “수 조 달러를 해외에 쓰는 동안 미국의 인프라는 황폐화되고 썩어서 쇠퇴했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면서 우리의 부와 힘, 자신감을 상실했다.”

 그런 트럼프는 “오늘 이 시간부로 권력은 워싱턴에서 국민에게 이양된다”라며 “오늘은 국민이 다시 이 나라의 통치자로 자리매김한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주권’을 강조하는 듯하면서도, 백인 노동자층의 지지에 기댄 채 철저히 기성 제도권을 겨냥해 온 트럼프의 선동적 포퓰리즘이 그대로 담긴 것이다. 트럼프 뒤편에 앉아 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취임사 내내 얼굴이 어두워진 채 기가 막힌 듯 종종 하늘을 올려다봤다.

 취임사 작성에 참여한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연설은 포퓰리즘과 민족주의 색채를 보여 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거리 집회에서 나올 법한 연설”이라고 했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대선 수사의 재탕으로 상투적 문구들을 모아 놓은 ‘트럼프 베스트 음반’”이라고 비판했다. WP는 “대선 후유증을 치유하는 대신 영원히 정치 캠페인하듯 국정을 운영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