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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역사, 그리고 우울한 죄의식
- 김소진 소설론 -
   - 오윤호(28)


[작품 요약]

김소진이 소설을 발표하던 90년대는 이데올로기적 대립 구도가 무너지고 사회전반에 걸친 탈정치화가 가속화되었던 시대였다. 이때 김소진은 이념의 시각에 의해 간과되어온 '사소한 개인'을 당대 현실 속에, 역사 속에 복원해 놓으면서 민중의 삶과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 사회와 역사를 재현한다. 그의 시각은 역사에 대한 상투적 인식에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소설쓰기를 통해 '근대적 주체'가 가지게 되는 새로운 역사서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김소진의 역사의식은 표현 매체인 언어와 구성방식인 회상 기법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의 '육화된' 언어 사용은 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반역사주의적 태도와 관련이 있으며, 역사로부터 소외된 자들의 삶을 복원하기 위한 글쓰기 전략인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소설 구성에 있어서도 영향을 준다. 회상을 통한 글쓰기는 실체로서의 역사를 환기하는데, 이에 김소진의 소설은 회상의 글쓰기와 반성적 역사의식이 절묘하게 결합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소진의 반성적 역사의식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하나의 '사건' 혹은 '역사'를 전도된 시각에서 보는 것이다. 이것은 권력 관계 속에서 그 계급적 이해를 역전시켜 보면서 다양한 시각과 입장들을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가령 [열린사회와 그 적들] 등에서는 하층민, 도시빈민들이 바라보거나 경험하는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서술하며 '지식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경험으로서의 역사', '기억 혹은 회상을 통해 드러난 역사'에 대한 능동적 해석을 요구한다. 그러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김소진은 비판적 시각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계급적 관계를 폭로하려 했지만, 피지배계층 내부에서도 발생하는 보다 견고한 권력적 계급 관계를 확인하고 말았다. 이데올로기가 은폐하려고 했던 것은 지배-피지배의 권력관계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 사람들 마다의 고유한 삶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역사에 대한 또 하나의 시각, 즉 단선적 인과적 역사를 거부하고 역사의 반복과 재생을 드러내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키작은 쑥부쟁이], [쥐잡이]에서 회상을 통한 서술 속에서 역사적 사건들(6.25 전쟁, 70년대의 궁핍, 80년대의 학생운동)을 공간적으로 중첩시켜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김소진은 '일회적인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중첩되어 기능하는 역사들'를 해석한다.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며 오히려 세력을 강화해 가고 있다. 게다가 억압의 이데올로기는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사소한 개인'의 삶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와 있다. 김소진은 회상에 의한 역사의 반복적 재생을 통해서 '근대적 주체'의 역사적 속성과 이데올로기적 억압를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억압을 거치면서 시간의 순차적 진행이 환기되는 순간, '나'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의 성장을 경험한다. 이때 성장이란 개인의 내면적 세계가 변모하고 성숙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명확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억압해 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즉 성장한 '나'가 반복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년의 '나'를 대면하는 소설 구성은 실패한 성장 과정에 대한 또다른 재현이다.
이때 [부엌], [자전거 도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보이는 실패한 성장의 기원은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근친상간의 상상력'에 있다. 그의 소설에서 아버지는 유년의 '나'가 감당해야 할 태초의 서사, 원초적 장면이다. 아버지는 역사에 패배한 자로서 '운명의 힘에 끌려다녔'야 하는 무기력한 존재이다. 아버지와 '나'의 불화는 통시적인 역사적 갈등에 대한 알레고리로 보인다. 그리고 어린 '나'는 여성 신체에 대해 성적 결합(훔쳐보기, 과도한 성적 상상력)을 시도하는데, '나'의 자연스러운 성적 욕구가 근친상간이라는 사회 윤리로 좌절되고 만다. 이렇듯 아버지로 비유되는 반복되는 역사와의 불화, 윤리에 의한 성적 억압은 '나'의 성장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은폐된 모습이다. 이 때 '나'는 죄의식을 경험하게 된다.
왜곡된 근대화 과정일망정 현재 우리 사회가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과정이라면 '사소한 개인'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무의식적 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죄의식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통제하려는 근대적 이데올로기.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 '나'는 '기억을 잊으려' 한다고 선언하면서 궁극적인 글쓰기의 모순성을 간파하고 기억하기로서의 주체, 글쓰기(이야기하기)로서의 주체, 억압을 통해 성장하는 근대적 주체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역사에 대한 김소진의 끝없는 글쓰기 작업은 한 개인의 생을 재구성한다는 소박한 측면만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회상의 작업과 맞물려 '한국 현대사를 반복·재생하는 중첩된 역사로 봄'으로써 '사소한 개인의 역사', 그러나 어쩌면 유일하게 실체화된 역사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죄의식의 기원을 찾고 그것을 속죄하려는 과정과 병행한다.
결국 김소진 소설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근대적 주체' 속에 감추어진 우울한 죄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유년으로의 반복적 회귀는 이데올로기의 억압에 길들여지지 않는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존재론적인 투쟁이었다. 그러나 기억의 늪에서 낚아 올린 혐오스러운 자신의 몰골을 감당하진 못한다. 왜곡된 역사가 정당한 처벌없이 수없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사소한 개인'의 삶이란 진정 무엇인가? 김소진 소설이 지식인 소설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이유, 그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현재형'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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