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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작문교실 - 조민희 (26)


`우리 아이 서랍에서 이런 게 나왔어요.'

`우리 아이 가방에서 이런 쪽지가 나왔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이죠?'

`우리 아이는 턱없이 많은 돈을 써요. 내가 안 주면 몰래 집어 가구요,' 또는,

`우리 아이는 도통 돈 달란 소릴 안 해요. 혹시 어디서 돈이 생기는 걸까요?' 등등.

엄마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그런 얘기들을 듣는다.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수첩에 메모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걱정이 태산이다. 내가 지금 위험한 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머리 속이 걱정으로 가득 차는 건 싫기 때문이다. 설령 내게 무슨 끔찍한 일이 생긴다 해도 그 일이 진짜로 벌어질 때까지는 엄마는 까맣게 몰랐으면 좋겠다. 왜냐면.........

왜냐면 엄마에겐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골칫거리라고는 나밖에 없다. 속 썩이는 다른 아이도 없고 열심히 싸워야 할 남편도 없다. 어른이니까 이제 못 살게 구는 친구도 없고 밀린 숙제도 없다. 그러므로 엄마는 다른 걱정거리 때문에 내 걱정을 잊는 일이 없다. 일단 내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걱정거리란 차라리 여러 가지가 뒤섞여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어느 한 가지를 걱정하다가 지치면 다른 걸 걱정하면 되니까. 한 가지에 대해서만 너무 많이 걱정하면 머리가 이상해질지도 모른다. 그 점이 나는 걱정된다. 엄마는 13 년 동안이나 나 하나 때문에 골치를 썩히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뱃속에 들어 있을 때까지 합쳐서 14 년쯤.........

내가 아직 엄마의 뱃속에 들어 있을 때, 또는 아주 작은 아기였을 때의 일들에 대해서 미주알 고주알 얘기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이모라는 사람들이다. 이모들이란 다 그런 가 싶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점잔을 빼다가도 이모들끼리 만나면 개학하고 만난 여자애들 같이 시끌시끌하다 (그런 이모가 내게는 셋이나 있다!). 각자의 인생을 제각각 살아갈 생각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다. 무엇이든 함께 머리를 짜내서 결정하고 좋은 게 있으면 나눠 쓰고 바꿔 쓴다. 예를 들어 예쁜 귀걸이나 모자 같은 게 있으면 이모들 사이를 돌고 돈다. 물론 우리 엄마도 거쳐서. 사촌이 여섯이나 되는데 아이들 역시 이모들 모두의 아이들인 것처럼 생각한다. 물론 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 이모들이 말하길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 받고 축복 받은 아이란다. 나를 낳기 위해 엄마는 온 세상과 전쟁을 벌였다는 거다. 큰 이모만 빼고 밑의 두 이모는 마치 그 전쟁에 참전했던 것처럼 얘기한다.

좀 더 어릴 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었다. 하지만 작년쯤부터는 그게 좀 과장된 얘기라는 걸 알았다. 전쟁 같은 건 없었다. 엄마는 그저 엄마의 두 분 부모님, 그러니까 내게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되는 분들과 심하게 싸워야 했다. 그 분들은 엄마 뱃속에 잠자코 있는 나를 `없애버리라'고 했다. 그냥 얌전히 있는 나를 두고 그런 무서운 얘기를 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아빠가 되어 주어야 할 사람이 무책임하게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혼식도 채 못 올리고 떠났다면 말 다 한 거다.

하긴, 전쟁은 아니었대도 대단한 소동쯤은 있었을 거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셔서 무덤 속에 잠자코 누워 계시지만 살아 계실 땐 무척 엄한 분들이셨으니까. 특히 우리 외할아버지. 연속극에 나오는 나쁜 아버지처럼 뭐든 집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엄마의 머리채를 잡아 방구석에 패대기를 쳐댔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한 이모가 울며 바지자락에 매달리고 다른 한 이모는 엄마를 감싸안고 그랬겠지. 나라는 애는 그냥 엄마 뱃속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게 웬 소동인가, 했을 테고 겁이 더럭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뱃속에 갇혀 있으니까 뭐라고 한 마디 거들 수도 없었다.

그런데 만약.........

만약에 말이다. 뱃속에 들어있는 내게도 생각을 말할 기회가 있었다면 나는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말썽 피우는 애는 되지 않을 테니 제발 낳아 달라고 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벌써 몇 백 번쯤 생각해 봤지만 그 때마다 다른 답이 나온다. 어떨 땐 차라리 태어나지를 말았더라면 싶을 때가 있다. 선생님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을 때에도 그런 생각이 들고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엔 어떤 애라도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저 사람이 너무 바글바글한 장소에 멍청히 서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다. 예를 들어 백화점 출입구 같은 데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야, 나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 걸, 싶은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애 하나쯤 태어나지 않았어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겠구나, 싶은 처량한 생각 말이다.

하지만 때론 태어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럽고 기쁠 때도 있다. 엄마랑 같이 목욕을 할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가 나를 우악스럽게 붙들고 비누칠을 박박 해댈 때면 아프긴 하지만 기분이 좋다. 또는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한바탕 달리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숨이 가빠서 고꾸라질 것 같은 때에, 어지러워서 엉덩방아를 찧을 때면 이상하게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뱃속에 든 아기일 적에 내가 뭐라고 말했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낳아달라고 했어야 하는 건지 차라리 나를 없애버리라고 했어야 하는 건지. 생각해보면 어느 쪽이나 나한테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나한테는 정말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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