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한국은 24시간 ‘배달 중’

Posted June. 29, 2021 07:20   

Updated June. 29, 2021 07:20

中文

 이달 22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161m² 규모 배달전문매장은 홀 없이 주방설비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다. 6명의 요리사는 한 스타트업체에 보낼 덮밥류를 만들어 대형 보온 가방에 넣었다. 포장이 끝나자 대기 중이던 배송 기사가 가방을 잽싸게 들고 나갔다. 이 매장의 김하나 점장은 “간단히 식사하고 개인 시간을 갖고 싶어 하는 소규모 회사로부터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공유주방에 입점한 13곳의 식당 역시 밀려드는 콜로 분주했다. 한 직원은 “코로나19로 홀 영업이 안 되다 보니 프랜차이즈 가맹점도 상당수 들어와 있다”며 “테이크아웃이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배달 주문”이라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도심 곳곳이 시간을 가리지 않는 ‘배달 격전지’로 변하고 있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지난해 배달 주문액은 1조3100억 원으로 요식업 오프라인 매출액(1조2900억 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배달 생태계인 ‘D-이코노미’가 생활 경제의 한 축으로 부상한 셈이다.

○ 낮 시간대와 지방으로 배달 영역 확장

 경기 과천에서 국숫집을 하는 김모 씨(49)는 코로나19로 홀 영업이 어려워지면서 배달을 시작했다. 퍼지기 쉬운 국수를 배달시키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지금은 매출의 30%가 배달 주문이다. 그는 “한때 홀 손님이 열 명도 안 돼 공과금도 못 낼 정도였다”며 “배달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달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주문 지역과 시간대에도 변화가 생겼다. 배달대행 1위 업체인 바로고에 따르면 점심 피크 시간인 오전 10시∼오후 1시의 배달 비중은 지난해 22.6%로 전년(19.5%)보다 3%포인트가량 늘었다. 반면 저녁 피크시간으로 통했던 오후 5∼8시의 배달 비중은 2019년 45%에서 지난해 43.7%로 줄었다.

 지역별로 지난해 배달 주문 건수 증가율은 울산(179%), 대구(148%), 강원(131%) 등의 차례로 높았다. 서울 강남권에 치중됐던 배달문화도 전국화한 셈이다.

 배달 주문이 일상화하면서 배달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증가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플랫폼 노동자는 약 22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0.92%에 이른다. ‘배민 커넥트’ ‘쿠팡 플렉스’ ‘GS 우리동네 딜리버리’ 등 비정기 배달까지 치면 전체 종사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김화진 씨(40·인천 서구)도 코로나19로 공장 잔업이 줄면서 부업으로 한 달에 4, 5회 정도 쿠팡 플렉스 일을 한다. 업계에서는 배달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4분의 1가량은 한 달 수입이 300만 원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일감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많은 이들이 신흥 산업인 배달업에 참여했고, 새로운 고용의 영역이 됐다”고 말했다.

○ ‘빠르게, 더 빠르게’ 치열해지는 속도 경쟁

 배달에서 소비자들이 원한 건 맛보다 속도였다. 바이브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SNS상에서 소비자들이 배달과 관련해 가장 많이 사용한 감성어는 ‘빠르다’로 전년보다 사용 빈도가 48.2% 늘었다. 이는 ‘맛있다’라는 표현의 사용 횟수 증가율(38.8%)보다 크게 높은 것이다. 김익성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새벽배송 등에 대한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신속성’이 보편적 경쟁력의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음식에서 촉발된 빠른 배달은 소비재 전반의 ‘퀵커머스’로 진화 중이다. 일주일에 3, 4번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직장인 임정민 씨(24·서울 영등포)는 밀키트나 조리식품 등을 살 때도 일반 이커머스 업체가 아니라 배달의민족의 비마트를 이용한다. 비마트는 이륜차 배송망을 이용해 일상 소비재 7000여 개를 30분 안에 배달한다. 쿠팡이 ‘쿠팡이츠’를 시작한 이유 역시 이륜차 배송 인프라를 통한 퀵커머스 진출을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도심에 소규모 점포를 둔 슈퍼마켓, 편의점 등 오프라인 매장도 잇따라 퀵커머스에 뛰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배송 경쟁으로 예전에 없던 편리한 소비 경험을 제공한 만큼 속도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종국에는 이커머스와 라이브커머스, D2C(Direct to Consumer) 등 신생 비대면 소비 전체가 ‘퀵커머스’라는 뉴노멀을 향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