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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관 입찰 스펙 중소기업은 웁니다

Posted August. 27, 2013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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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세븐럭을 운영하는 공기업 그랜드코리아레저(GKL)는 임직원들에게 나눠줄 아웃도어 점퍼 7억3800만 원어치(1663벌)를 사려고 지난해 6월 공공조달 전자상거래 웹사이트 나라장터에 입찰을 부쳤지만 무산됐다. 점퍼는 중소기업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품목인데 자격을 백화점 10곳 이상에 납품하는 브랜드로 제한했더니 한 곳만 입찰서류를 낸 것이다. 재입찰에선 2개 업체가 참여했지만 품평회를 통과하지 못해 또 무산됐다.

결국 GKL은 지난해 8월 백화점 10곳 납품 조건을 없애고 대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했다. 중소기업 품목이라도 유찰되면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단일 건으로 1600벌 이상 아웃도어 점퍼를 납품한 적 있는 곳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중소기업 3곳과 네파, K2, 블랙야크 등이 경쟁한 끝에 결국 현대백화점그룹의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계열사인 현대H&S가 선정됐다.

공공조달 시장에서 공공기관들이 대기업에 유리한 까다로운 스펙을 요구하며 중소기업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달청 고시에 따르면 정부부처와 산하기관, 국공립학교, 교육청 등은 구매 금액이 일정 규모 이상이면 반드시 조달청을 통해야 하지만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은 자체 계약할 수 있다. 지난해 전체 공공조달 시장 106조4000억 원 중 직접계약 비중은 67.8%에 달했다.

납품업체의 과거 실적이나 신용등급, 매출 등에 지나치게 높은 배점을 둬 중소기업을 배제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국내 조사업체 A사는 4월 한국마사회가 나라장터에 올린 1억1960만 원짜리 2013 통합서비스품질평가 설문조사 입찰에 관심이 있었지만 제안서도 넣지 못하고 포기했다. 첫 번째 걸림돌은 유사 용역 실적이었다. 계약금액 5000만 원 이상인 서비스 만족도 조사를 해본 횟수에 20점 만점을 부여해 경험이 적은 A사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매출액에도 25점을 배점했다.

마사회는 조사업체의 신용등급에 따라서도 점수차를 많이 냈다. 최고 등급인 AAA에는 25점을 준 반면 BBB 등급은 11점만 부여했다. 조달청이 A 이상에 만점을 주고 BBB 등급까지는 1단계마다 0.2점씩 감점해 중소기업이 신용등급 때문에 입찰에서 떨어지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것과 반대다. A사 대표는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입찰 참여 기회마저 박탈하다니 억울하다며 대기업, 외국계만 좋은 꼴이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