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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 고려청자 재현 2점은 김일성에게 2점은 김정일 손에

북서 고려청자 재현 2점은 김일성에게 2점은 김정일 손에

Posted March. 16, 2013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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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권 광주요 도자문화연구소 이사장에게 19671997년은 잃어버린 30년이나 마찬가지다. 촉망받던 건축학도에서 북한공작원으로 바뀌어버린 신분. 한껏 누리던 부와 명예는 차치하고라도 꿈을 잃었다는 것이 그에겐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의 끝에서 선택한 귀순은 자식들과의 생이별이란 처절한 대가를 요구했다. 참 가혹한 삶이다. 그러니 그 30년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도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인터뷰 도중 조 이사장 스스로 꺼내놓은 기억이 하나 있다. 30년간 그가 남긴 유일한 흔적이라고 했다. 바로 고려청자를 재현한 일이었다.

1971년 북한의 간부들이 조 이사장을 찾아와 대뜸 물었다. 내년에 김일성 수령님께 드릴 선물이 뭡네까? 이듬해가 김일성의 환갑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기회에 북한이 아닌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게 고려청자였다. 고려청자를 재현해 보겠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곧 김일성에게서도 OK 사인을 받았다.

그는 우선 청자를 만들어 본 사람을 찾아 달라고 했다. 최소한 청자 제작을 옆에서 본 사람이라도 필요하다고 했다. 사흘 만에 적임자가 나타났다. 평양 도자기 공장에서 일하던 60세쯤 된 화부()였다. 화부는 그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전 사실 남쪽 출신입니다. 파리에서 유학하다 북한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제야 화부가 마음을 열었다. 자기도 남쪽 출신이라는 말과 함께. 그게 7월쯤이었다.

고려청자 재현에는 8개월쯤 걸렸다. 1972년 3월 그와 화부는 70cm 높이의 청자 12개를 구워냈다. 가장 잘 구워진 2개는 김일성에게, 그 다음 2개는 김정일에게 건네졌다.

그 무렵 아버지 조소수 선생은 1963년 설립한 광주요를 통해 한국 고유의 도자기 문화를 되살리는 데 앞장서고 있었다. 도자기에서만큼은 부자가 서로 통했던 셈이었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