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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러닝메이트

Posted July. 16, 2016 07:26   

Updated July. 16, 201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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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6년 8월 9일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우승에는 2위로 골인한 어니스트 하퍼의 도움이 컸다. 하퍼는 초반 오버페이스하는 손기정에게 “슬로, 세이브(slow, save)”라고 소리치며 손짓했다. 손기정은 그와 보조를 맞춰 달리다 막판 스퍼트로 우승했다. 당시 3위를 한 남승룡이 작전상 손기정의 페이스 조절을 도왔지만 하퍼도 ‘숨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 셈이었다.

 ▷페이스메이커와 비슷한 러닝메이트는 경마에서 우승 후보 말이 평소 훈련할 때 옆에서 같이 뛰어 주는 말을 뜻한다. 최고의 말과 같이 연습하다 보니 러닝메이트의 실력도 만만찮다. 훈련을 돕는 말이 실제 대회에 출전해 우승까지 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인생에서는 이런 역전극이 종종 벌어진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2011년 대구 육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아벨 키루이가 러닝메이트 출신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를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로 정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팀 케인 상원의원을 낙점할 가능성이 높다. 러닝메이트들은 파트너의 단점을 절묘하게 보완하는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펜스 주지사는 트럼프의 반(反)무슬림정책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합리주의자이면서 아내 캐런과 30년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무책임한 막말을 쏟아내고 결혼을 3번이나 한 트럼프와 너무 다르다. 천주교 신자인 케인 의원은 클린턴의 아킬레스건인 보수주의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헌을 하면 부통령제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통령의 유고시에도 국무총리가 승계하는 것 보다는 대통령과 함께 국민의 신임을 얻은 부통령의 정통성이 높다. 꼭 부통령 러닝메이트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비공식 러닝메이트는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자격요건은 국민의 의견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슬리지 않게 느끼는 어법으로 치명적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좋을 것 이다.

홍 수 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