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초입, 매실에는 아직 신맛이 남아 있고 창가 파초잎 그림자가 비단 휘장 위에서 파르라니 일렁대는 계절이다. 해가 길어지면서 낮잠도 푹 즐길 수 있고 공중엔 버들솜이 분분하게 흩날린다. 자연은 여름으로의 진입을 예고하고, 시인은 버들솜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파초와 비단 휘장이 싱싱한 푸름을 서로 공유하는 동안 시인은 버들솜 잡기 놀이에 빠진 동심과 교감하면서 초여름의 정취를 한껏 만끽하고 있다.
갓 마흔을 넘긴 이 시기의 시인은 시에서처럼 그렇게 마냥 느긋하게 지낼 처지는 아니었다. 당시 그는 부친의 3년상을 치르기 위해 관직을 떠나 고향에 머물렀고,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의 갈등으로 조정은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뉜 채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주전파로서 시인은 분주히 애국지사들을 찾아다니며 조정의 무능과 부패를 질타했다. 이런 점에서 초여름 정취에 심취한 시인의 이 망중한(忙中閑)은 조금 낯설게 느껴지긴 해도 어쨌든 소중한 기회였을 것이다.
이 시는 2수로 된 연작시. 제2수에서도 시인의 시선은 아이들을 떠나지 않는다. ‘맑은 샘물 손에 담아 장난삼아 파초에 뿌리자, 아이들은 빗소리로 착각한다’라 했다. 천진난만한 동심의 프리즘을 통해 현실적 암울을 잊고 잠시 저만의 카타르시스를 찾으려 했는지 모른다. 잡념 없이 아이들을 바라보고 동심과 소통하는 사이, 세상사 번뇌는 초여름 긴긴해 속으로 사르르 녹아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