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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도 TV 보는 시대

Posted June. 03, 2014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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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TV를 봤다.

기자는 최근 서울 여의도 반려견 전용 인터넷방송 채널해피독 사무실에서 쿠키, 마이 프레셔스와 TV 앞에 앉았다. 쿠키는 여섯 살짜리 래브라도 레트리버, 마이 프레셔스는 생후 7개월인 시베리안 허스키다.

TV 화면에서 개가 개껌을 뜯자 쿠키가 화면 앞으로 돌진하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이어진 당구대 장면에선 알록달록한 당구공이 경쾌한 파열음을 내며 빠르게 굴러다녔다. 마이 프레셔스의 고개도 정신없이 따라 움직였다. 기자의 눈엔 지루한 폐쇄회로(CC)TV 같은데 개들에겐 배꼽 잡는 예능이었다.

반려견 127만 마리(농림축산식품부 추산) 시대를 맞아 개 전용 방송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CJ헬로비전은 올 2월 이스라엘에서 제작한 도그TV 판권을 구입해 이스라엘,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방송을 시작했다. 채널해피독도 지난달부터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해 인터넷으로 방송하고 있다.

주요 시청층은 혼자 집 지키는 개들이다. 주인은 외출할 때 반려견을 위해 TV를 켜놓고 나간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시청견도 늘어나는 추세다. 채널해피독 자문을 맡은 박철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홀로 집에 남겨진 반려견은 울부짖거나 문을 긁으며 낑낑대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분리불안증을 앓는 개들은 다른 강아지가 노는 모습을 TV로 보며 안정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들은 코미디를 선호한다. 개 전용 프로그램에선 주기적으로 헥헥헥 하며 헐떡이는 소리가 났는데, 이 소리만 나면 한눈팔던 개들도 화면을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곽상기 채널해피독 대표는 개들이 노는 장면을 촬영한 뒤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개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만 따로 편집해 담는다고 밝혔다. 도시 생활을 하는 개들을 위해 자연 풍경과 함께 물 바람 새 소리도 들려준다. 여기엔 건국대 수의학과 박희명 교수팀이 연구한 반려견 안정을 위한 고주파 소리도 포함돼 있다. 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여서 기자는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들을 수 없었다. 한참 TV를 보고 있으니 개가 돼 거리를 활보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개의 눈높이에 맞춘 카메라 앵글 때문에 화면 속 길가는 사람들의 정강이만 보이고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개와 눈도 마주쳤다. 개를 캐스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출연료도 없다. 자기 개가 TV 화면에 나오길 바라는 주인이 많기 때문이다. 캐스팅 기준은 외모보다는 잘 노는 예능감이 중요하다. 국내에서 제작된 개 전용 프로엔 똥개는 한 마리도 나오지 않는다.

개들은 자기와 같은 종이 TV에 나오면 가장 좋아합니다. 거리의 똥개는 TV 볼 일이 없으니 출연도 하지 않아요.(정석현 채널해피독 PD)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