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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원주 컨피덴셜

Posted March. 25, 2013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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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자 윤모 씨의 전현직 고위 관료 성접대 의혹 기사를 보다 문득 전미비평가협회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받은 1997년도 영화 L.A. 컨피덴셜을 떠올렸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건설업자는 연예인 지망생을 데려다 영화배우처럼 성형수술을 시키고 관리하며 지방검사와 시의원, 경찰 등 유력자들에게 성노리개로 제공한다. 그렇게 성접대하는 장면을 몰래 사진으로 찍었다가 상대를 협박하는 데 써먹는다. 영화에 묘사되는 부패의 고리는 거대하다. 검사, 정치인, 건설업자, 연예계, 마약조직이 모두 동업자 관계다. 그 뒤를 쫓는 경찰이나 이를 보도하는 언론도 그 고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는 범죄소설의 거장 제임스 엘로이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소설의 내용은 영화보다 스케일이 더 크다. 영화에서는 사건이 발생해서부터 끝날 때까지가 몇 달 정도로 보이지만 소설에서는 8년이나 되며, 195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추악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속속들이 묘사하고 있다. 너무 끔찍해 고개를 돌리고 싶은 대목도 많다. 결말도 원작 쪽이 훨씬 더 찜찜하다. 영화는 검경()이 사건을 해결하고도 진상을 제대로 공표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하지만, 원작소설에서는 아예 주범을 잡지 못한다. 소설은 특정 인물이나 계층이 나쁜 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위부터 아래까지 총체적으로 썩었다는 냉소적인 시각이다.

이 소설은 1940년대 후반1950년대의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작가의 L.A. 4부작 중 세 번째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속에서 경제적 풍요를 만끽했다. 이 시기를 황금기로 묘사하는 영화나 소설도 많다. 그러나 미국인의 정신은 피폐해지고 있었다. 집단적인 불안이 광기로 폭발한 매카시즘, 허무함을 반항으로 풀어내려 했으되 방향이 없었던 비트 제너레이션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던 콜필드가 기성세대는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으며 거리를 방황하는 것도 이 시기다.

간이 크지 못해서인가. 강원 원주의 호화 별장을 배경으로 한 원주 컨피덴셜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게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마음 편하게 한 건설업자의 창의적인(?) 불법 로비 사건이고, 일부 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 문제라고 정리해 버리기 어렵다. 성접대를 했다는 주부와 대학원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제의 동영상을 구하지 못하니 재연()으로 만들어 시청자의 눈을 끌어보겠다는 언론사는 또 뭔가. 한국 사회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외면하려 해도 외면할 수 없게 한다. 영화나 책이라면 극장을 나가거나 책장을 덮으면 그만인데. L.A. 컨피덴셜의 결말과는 달리 진상과 관련자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길 기대한다.

장 강 명 산업부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