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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융합의 비빔밥

Posted November. 28, 2012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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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비빔밥을 좋아했어요. 모든 것을 섞는 한국의 비빔밥이 자신의 예술품과 비슷하다고 말하곤 했죠. 올 7월 20일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백남준 탄생 80주년 특집전 개막식에서 구보다 시게코 여사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비빔밥에 대한 회상으로 풀어냈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19322006)은 생전에 비빔밥을 즐겨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예술과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비빔밥에서 찾아냈다. 다양한 재료를 비비고 섞어 하나로 만드는 비빔밥 정신을 한국문화의 핵심코드라고 해석했다.

비빔밥의 옛 이름 골동반()은 1800년대 말 간행된 요리책 시의전서에 처음 등장한다. 어지럽게 섞는다는 뜻을 지녔다. 섣달그믐날 저녁 남은 음식을 모아 비벼 먹은 데서 유래됐다. 비빔밥은 한식 세계화의 선두주자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대한항공은 1997년부터 비빔밥을 기내식으로 제공하는데 내외국인 불문하고 선호 메뉴다. 외국인들은 밥 따로 재료 따로 먹기도 한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비빔밥 마니아였다. 앤젤리나 졸리, 귀네스 팰트로 같은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저칼로리 다이어트식으로 챙겨먹는다.

한국 드라마에선 시련을 겪은 여주인공이 양푼 가득 밥을 쓱쓱 비빈 뒤 입안 가득 떠먹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 이때의 비빔밥은 몸의 양식뿐 아니라 정신적 허기를 달래고 기운을 차리게 만드는 마음의 보약이란 의미일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26일 TV단독 토론회에서 가장 자신 있는 요리로 비빔밥을 꼽았다. 다양한 재료가 섞여 맛을 내듯 각자 개성과 지역마다 특성은 달라도 온 국민이 하나가 될 때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다는 뜻에서 비빔밥을 통합의 상징물로 내세운 모양이다.

백남준은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이란 수필에서 비빔밥 본질은 그것이 콩나물도 숙주나물도 표고도 시금치도 고비나물도 아니라는 점에 있다고 정의했다. 밥에 들어가는 나물들이 독불장군처럼 자기만 내세우면 비빔밥의 제맛을 낼 수 없다. 재료들이 따로 겉돌지 않고 한데 어우러질 때 비빔밥의 시너지는 발휘된다. 고슬고슬한 밥과 남은 반찬에 고추장 듬뿍 넣고 참기름 한 방울 톡 떨어뜨린 비빔밥. 그 안에 녹아든 소통과 융합의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라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