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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에 맞선 심장밖에 없었지만 우리의 꿈이 장벽 허물었다

탱크에 맞선 심장밖에 없었지만 우리의 꿈이 장벽 허물었다

Posted November. 10, 200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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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이 되는 9일 독일 전역은 축제 열기에 휩싸였다. 통독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부근에는 각국 지도자를 비롯해 10만여 명의 군중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AP통신은 20년 전 브란덴부르크 문은 냉전 시절 기관총과 철조망에 둘러싸여 외롭게 서있었다며 그러나 오늘은 춤을 추고 승리감에 도취해 기뻐했던 20년 전 그날의 축제의 장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등 장벽 붕괴 20주년 축하를 위해 찾아온 정상들을 맞았다. 장벽 붕괴에 큰 영향을 미쳤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도 자리를 함께했다.

베를린 장벽은 동서독 분단이 고착된 뒤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늘자 1961년 동독 정부가 서 베를린 쪽 경계에 쌓은 콘크리트 담으로 155km에 이른다. 1989년 붕괴되기 전까지 28년간 136명이 자유를 찾아 넘다가 목숨을 잃었다.

초대형 도미노로 재현한 장벽 붕괴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높이 2.3m 초대형 도미노 벽돌 1000개를 넘어뜨리는 행사. 과거 장벽이 서 있던 자리 위를 둘러쳐 세워진 도미노 벽돌은 브란덴부르크 문 부근 포츠담 광장에서 국회의사당까지 1.5km 구간에 이른다. 첫 도미노를 밀어뜨릴 영광의 주인공은 자유노조 운동을 이끌며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의 물꼬를 튼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가벼운 폴리스틸렌 소재로 만들어진 도미노 벽돌에는 우리는 한 민족이다 등 통일을 은유하는 다양한 메시지가 적혀 있다. 피 흘리는 심장이라고 적힌 한 도미노 벽돌에는 베를린 시가 칼에 베여 피를 흘리는 모습이 형상화됐다.

베를린 시민 스테판 슐러 씨는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각자의 장벽이 존재한다며 이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고 기쁨을 전했다. 두 딸을 데리고 나온 동유럽 출신의 자크벨리나 바흐슈타인 씨(35)는 정말 감동적인 날이다. 장벽이 무너진 덕분에 동서독에 흩어져 살던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은 도미노 아이디어를 비웃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것만큼 장벽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며 학생들이 직접 제작해 오늘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간 베를리너 차이퉁은 이날 기념식은 냉전 이후에 태어난 유럽의 젊은 세대들에게 철의 장막에 도전했던 20년 전 사람들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린 오케스트라 연주의 지휘를 맡아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했다. 이어 독일 출신의 DJ 폴 반다이크와 미국 밴드 본 조비가 축하 공연을 펼쳤고, 마지막 순서로 불꽃놀이가 브란덴부르크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정상들의 축하 메시지

메르켈 총리는 이날 오전 동베를린 시절 저항의 중심지였던 게세마네 교회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동독에서 성장한 메르켈 총리는 장벽이 무너진 뒤 처음으로 서베를린으로 넘어갔던 보른홀머 다리의 검문소를 다시 지나 20년 전의 흔적을 따라 갔다.

앞서 메르켈 총리는 이 날짜 빌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장벽이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붕괴 20주년이 되는 오늘은 우리가 독일과 유럽의 통일에서 얻은 믿을 수 없는 행운을 일깨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라운 영국 총리는 브란덴부르크 문 앞 연설에서 베를린과 독일 그리고 유럽의 일치단결은 장엄한 업적이라며 어둠 속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꿈을 꾼 당시 사람들의 강인한 정신이 있었기에 장벽이 사라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온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전날 기념행사에서 아직도 여전히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미국과 유럽이 새로운 노력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우리 역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 밤에 끝나지 않았다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신해 종교나 부족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최근 AP와의 인터뷰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를 평화의 촉매제라고 격찬했다. 그는 장벽 붕괴 이후 서로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며 우리는 핵무기 및 유럽 내 군사력 감축을 시작했고 다른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소련의 비밀경찰(KGB) 요원으로 동독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통독의 발전상을 지켜보고 있으며 러시아와 독일이 새로운 기초 위에서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데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폴란드 자유노조 운동가였던 예지 부제크 유럽의회 의장은 독일 의회에서의 연설에서 철의 장막 동쪽에 있던 사람들은 탱크에 맞선 심장밖에 가진 게 없었지만 결국은 승리했다고 장벽 붕괴의 의미를 설명했다.



성동기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