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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처럼 하루 수백억 멋대로 굴리는 매니저 없다

드라마처럼 하루 수백억 멋대로 굴리는 매니저 없다

Posted October. 26, 200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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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의 대명사, 분초를 다투는 두뇌 싸움, 하루에 수천억 원을 주무르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큰손.

대학생들의 선호직업 1순위로 떠오른 펀드매니저에 대한 이미지다. 9월 말 현재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펀드매니저는 1087명. 펀드매니저 1000명 시대를 맞은 지금, 겉으로 비치는 이들의 이미지는 실제와 얼마나 부합할까.

동아일보는 68개 자산운용사에 설문을 의뢰해 답변을 보내온 684명의 정보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이공계 전공자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 수학, 산업공학 등 이공계 출신 펀드매니저들이 전체의 20.6%였다. 경영(35.7%) 경제(22.4%)의 비율이 단연 높았지만 수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하는 파생금융상품이 많이 나오면서 이공계 출신이 증가하는 추세. 처음부터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에서 경력을 쌓은 매니저가 대부분이지만 삼성전자, 한화, SK텔레텍처럼 해당 산업에서 변신한 이도 의외로 많았다.

자산운용업계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주식시장에는 화학 건축 나노기술 의료 등 모든 업종의 업체가 상장돼 있다며 직감에 따라 주식을 사고팔기보다는 해당 산업을 깊게 들여다보고 새로운 흐름을 짚어낼 수 있는 사람이 펀드매니저로 적합하다고 말했다.

스타는 가고 시스템이 남았다

이 펀드는 벤치마크(펀드평가의 기준지수)를 15%나 상회했습니다. 운용상태를 점검해보세요.

국내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매니저 39명은 증시가 마감하면 더러 이런 경고성 e메일을 받는다. 수익률이 기준지수를 밑돌 때나 너무 좋아질 때다. 이 회사 박진호 주식운용3본부장은 매니저가 지나치게 변동성이 높은 종목을 편입한 것은 아닌지 점검하라는 경고신호라며 과거에 비해 펀드매니저 개개인의 재량권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는 펀드매니저 1000명 시대의 한 단면이다. 드라마에 나오듯 하루에 수백억 원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는 매니저는 실제로 없고 개인의 역량은 집단 속에서만 발휘된다. 미래에셋도 구재상 대표 등 극소수 임원을 제외하면 대중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진 매니저는 거의 없다. 약 10년 전 펀드투자 붐이 막 시작됐을 때 신문 광고에 팔짱을 낀 펀드매니저들의 사진이 큼직하게 실렸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펀드매니저들이 투자할 종목을 고를 때 세 단계를 거친다. 우선 회사 리서치파트에서 모델 포트폴리오를 짠다. 이를 토대로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이 함께 모여 전략 포트폴리오를 추리고, 최종적으로 실제 투자할 종목을 뽑는다. 회사가 짠 포트폴리오 하에서 펀드매니저 개인이 역량을 발휘하는 부분은 많아봤자 2030% 수준이다. 그나마 이런 독자 플레이를 할 땐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한투운용 강신우 부사장은 한두 명의 스타매니저에게 전권을 맡겼다 수익률이 크게 나빠지거나 다른 곳으로 이직하면 결국 투자자들만 손해라며 펀드매니저의 오판()을 막아내기엔 지금이 훨씬 더 좋은 구조라고 말했다.

더 심해진 경쟁, 통찰력과 부지런함이 살길

대중의 인기를 얻어야 한다는 부담은 줄었지만 다른 펀드와 차별화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더 늘었다. 이른바 손이 타지 않은 종목이 없기 때문이다. 신영투신운용 이상진 부사장은 시장에서 웬만한 기업은 모조리 연구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새로운 종목을 발굴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경쟁은 선수끼리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매니저가 어떤 종목을 사려고 보면 이미 투자해 있던 개미(개인투자자)들이 털고 떠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차별화하려면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이채원 부사장은 신종 인플루엔자가 확산되면 여행업, 백화점 등이 타격을 받으리라고는 누구나 다 생각한다며 여기서 한발 나아가 사람들이 손을 씻어 눈병이 줄어드는 바람에 안과마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추측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찰력은 부지런함에서 나온다. 한국밸류 매니저들은 일주일에 4번 이상, 연간 100200번은 투자회사를 직접 탐방한다. 이미 사들인 종목도 분기에 한 번 확인한다. 기업의 CEO와도 수시로 만난다. 이렇게 해서 얻은 감()은 통찰력이 되고 투자의 오류를 줄이게 된다.

ING자산운용 최홍 사장은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어 지금은 2만 원인 주가가 20만 원이 될 수 있다는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미포조선의 주가가 2000년에 4000원에 불과했지만 2007년 말 39만 원대로 무려 100배 가까이 치솟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유재동 이세형 jarrett@donga.com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