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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숲 노천탕에 그윽한 생의 휴식

Posted June. 01, 2007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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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역을 출발한 신칸센 열차. 한 시간쯤 달렸을까. 다카사키 역 이후로는 내내 터널 안이다. 분명 산악을 지나는 것이리라. 조모고겐 역에서 다시 시작된 긴 터널. 신칸센으로도 13분을 달릴 만큼 길다. 그 암흑 공간을 탈출하기 직전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종착역인 에치고 유자와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다.

이것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 펼쳐졌다로 시작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 첫 머리의 그 긴 터널이. 한겨울이라면 밤의 밑바닥이 하얗게 변했다는 다음 글귀 역시 실감하리라. 니가타는 한겨울에 눈이 4m 이상 내리는 설국이니까. 그러니 잊지 마시라. 류곤() 온천 료칸을 여행할 때는 설국을 체험으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에치고 유자와. 소설 설국의 무대이면서 동시에 야스나리가 원고를 쓰기 위해 묵었던 온천마을이다. 유독 료칸에 묵으며 글쓰기를 즐겼던 이 소설가. 그 료칸 다카한()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킨다. 물론 세월만큼 변화가 커 모습은 호텔로 변했어도. 그래도 집필실만큼은 2층에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료칸 류곤은 이 에치고 유자와 역에서 멀지 않다. 자동차로 15분 거리인 무이카마치 온천마을의 산자락 평지에 있다. 40년째 영업 중이라는데 외형만 보면 수백 년 됨 직해 보인다. 고풍스러움이야말로 류곤의 자랑이지요. 몇 채만 빼면 대부분 100년 이상 된 고옥들로 모두 근처에서 옮겨왔습니다. 료칸 사무를 총괄하는 요스케 시노하라 씨의 설명이다.

설명을 듣고 보니 연못을 낀 삼나무 숲가의 정원을 고옥 여러 채가 둥그렇게 둘러싼 형국이다. 온천이라고 하나 근처는 한가로운 농촌 모습이다. 그래서 료칸이라는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이 고을의 대가로 오해할 만큼 류곤의 건축은 품위 있고 고풍스럽다. 그중 백미는 250년 된 무사가옥. 근처 시오자와 마을의 만석군이자 사무라이였던 사람의 집으로 객실로 사용 중이다.

역사를 배경으로, 고풍을 테마로 한 전통 료칸 류곤. 객실에는 그것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정갈한 다다미방에는 이로리(방 한가운데 천장걸이 주전자가 있는 숯불 놓기 공간)가 있고 문을 열면 연못과 숲, 정원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벽에 걸린 서액의 글씨도 품위가 있다.

노텐부로는 삼나무 숲가에 있다. 수면에 반사된 진초록 숲과 파란 하늘 그리고 상큼한 공기. 자연의 정기가 온천수에 그대로 녹아들어 내 몸에 스며들 것 같다. 고요한 정적 가운데 오로지 들리는 것은 온천수가 흐르는 작은 소음뿐. 이마저 류곤에서는 음악이 된다.

그러나 이것 역시 류곤의 진수는 아니다. 그것은 저녁식사의 상 위에 펼쳐진다. 그 빛나는 음식. 지난 40년 류곤의 부엌에서 할머니가 된 늙은 찬모와 비슷한 세월 동안 근처 이와나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숯불로 구워 온 74세 노장의 손길로 빚은 니가타의 향토요리다.

여기에 사케(일본 청주)의 고향 니가타의 90여 개 양조장에서 빚은 미주의 향연까지 반상에 펼쳐지면 류곤의 저녁상은 황제의 정찬 못지않게 격상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진수 중의 진수는 마지막 순서인 쌀밥. 쌀의 고장 니가타에서 생산되는 일본 최고의 쌀 고시히카리, 그중에서도 긴자의 요정 주인이라면 누구나 최고로 치는 우오누마산 쌀, 그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손꼽히는 시오자와산 고시히카리로 지은 밥이다. 그러니 류곤에 묵음이란 바로 니가타의 진수를 섭렵함이다. 료칸 여행의 진수를 또 하나 체험하는 것과도 같다.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