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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어도 좋다, 한국말만 빼라

Posted May. 04, 200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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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3시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에 있는 삼성물산 본사 17층 회의실.

감색 정장과 단정한 투피스 차림의 젊은 남녀 39명이 서 있다. 올해 초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합격된 삼성물산 상사 부문 신입사원들이다. 이날은 3개월간의 신병교육대 훈련을 마치고 정식 사원으로서 계급장을 다는 날.

하지만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인 외국어 프레젠테이션 콘테스트가 남아 있다.

6, 7명씩 한 팀을 이뤄 해외 현지를 돌며 발굴한 사업 아이디어를 놓고 팀끼리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 실전에 투입되기에 앞서 그동안 배운 실무교육을 바탕으로 모의 전투를 치르는 셈이다. 주어진 12분 동안 파워포인트 엑셀 등 모든 무기가 허용되지만 한국말만은 쓸 수 없다. 이들에게 허용된 언어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 오로지 외국어뿐이다.

새내기 직장인이 발굴한 신규사업은

대학을 갓 졸업한 예비 직장인들이 발굴해낸 유망 신사업은 참살이 관련 산업이 주류를 이뤘다. 발표에 나선 6팀 가운데 4팀이 주거환경서비스 사업, 건강음료 스무디 프랜차이즈 사업, 필리핀 은퇴자 마을 조성 사업, 스포츠 고글 사업 등 건강과 환경, 운동을 주제로 내세웠다. 발표 수준도 단지 사업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정도가 아니다.

이들은 철저한 국내외 시장조사를 통해 설득력 있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이대며 사업 타당성을 설명했다. 또 타깃 고객 설정과 마케팅 방법, 재무 분석에 이르기까지 프로들의 사업제안서에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부쩍 강조되면서 혼혈아 지원과 중국 농촌지원 봉사활동 등 사회공헌 활동을 신사업으로 제시한 팀도 2개 있었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지만 봉사활동을 통한 기업 이미지 제고가 가져 올 유무형의 자산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발표에 참가한 신입사원 황승연(28) 씨는 학교나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과 현장에서 직접 부닥친 현실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면서 팀 프로젝트를 하면서 팀워크의 중요성도 절감했다고 말했다.

실전 투입기간 크게 단축

종합상사 업계에서는 상사맨이라는 직업을 맨주먹으로 바위 깨는 사람에 비유한다.

제품이나 서비스 등 유무형의 상품을 가지고 사업하는 다른 직종과 달리 상사맨은 오로지 입과 경험을 가지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바이어와의 짧은 만남에서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핵심 메시지를 전달해 상대를 설득하는 프레젠테이션 능력은 더없이 중요하다.

만나는 사람이 대부분 해외 바이어이다 보니 영어 등 외국어 실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삼성물산이 2002년 신입사원 입사 전형에 영어 프레젠테이션 면접을 도입했으며 이듬해부터는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외국어 프레젠테이션 콘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 제도를 도입한 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신입사원이 제몫을 하기까지 보통 2년이 걸리던 기간이 6개월 정도로 크게 단축됐다. 또 신입사원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지면서 조기에 퇴사하는 비율도 10% 수준까지 떨어졌다.

삼성물산 인사팀 추교인 상무는 출중한 재능에 세련미까지 두루 갖춘 후배 사원이 들어오면 선배들도 부담스러워 자극이 된다면서 오히려 조직이 건강해지는 효과도 덤으로 얻었다고 설명했다.



김창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