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알아두자. 영화 흡혈형사 나도열은 당신이 기대하는 딱 그런 영화가 아니다. 당신의 상상에서 40%쯤 비켜서 있다. 이 영화는 생각보다 덜 웃기고 더 진지하다. 영화가 예상과 더욱 다른 인상으로 다가오는 건 관객이 기대하는 김수로와 김수로가 기대하는 김수로의 모습이 서로 크게 어긋난 데서 빚어진다. 이는 나도열이 못 웃긴다기보다 다소 안 웃기는 쪽을 선택한, 바로 그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열(김수로)은 분노나 성적() 자극으로 흥분하면 흡혈귀로 변한다. 어느 날 나도열이 형처럼 따르던 강 형사(천호진)가 악당 탁문수(손병호)의 손에 쓰러진다. 탁문수는 나도열이 돈을 받고 뒤를 봐주던 인물. 갈등하던 나도열은 결국 복수에 나서지만 흡혈귀 전문 사냥꾼인 비오 신부(오광록)와 맞닥뜨린다.
김수로가 누군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부터 반칙왕 화산고 S다이어리 간 큰 가족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연기자다. 주연 잡아먹는 조연으로 자리를 굳힌 그가 이번에 13년 만에 단독 주연으로 처음 나선다. 자, 관객은 김수로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아마도 미치도록 나를 웃겨줘!일 것이다.
이번엔 김수로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자. 김수로는 1993년 투캅스로 데뷔한 이래 누구보다 오랜 조연 생활을 거치면서 탄탄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온 관록의 배우다. 그는 코미디뿐 아니라 흑수선 태극기 휘날리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통해 심각한 연기의 실력도 증명했다. 관객 대부분은 그를 코미디언보다 웃기는 배우로만 단정한다. 자, 첫 단독 주연을 맡은 그는 어떤 고민을 할까? 관객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으면서도 새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문제는 여기서 잉태된다. 관객은 김수로의 얼굴만 봐도 웃음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지만, 정작 김수로는 그렇게 유치하게 웃기고 싶은 마음이 없다.
김수로가 연기하는 주인공은 흥분하면 흡혈귀 본성이 순식간에 드러나 엄청난 힘으로 악당들을 처치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뱀파이어보다 헐크에 더 가깝다. 밝고 코믹한 이미지보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모습에서 블레이드나 배트맨 스파이더맨 데어데블과 같은 반()영웅의 이미지와도 겹쳐진다.
중반까지 영화는 복수에 나선 나도열이 흡혈귀의 공격 본성과 강력한 파워를 유지하기 위해 야동(야한 동영상)을 무시로 보며 흥분 상태를 계속 유지시켜야 하는 애환(?)에 포인트를 두고 웃음을 끌어낸다. 극악무도하면서도 징글맞은 악당의 신 개념을 제시한 손병호의 연기도 압권인 데다, 반 박자 쉬었다가 관객을 덮치는 김수로의 애드리브 실력은 여전하다.
그러나 흡혈형사는 흡혈귀가 된 남자라는 중심 설정이 갖는 코미디 요소와 비리에 연루된 형사가 선배를 위해 벌이는 눈물겨운 복수극이라는 줄기 이야기가 가진 드라마적 요소를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코미디와 드라마가 징검다리처럼 순서를 바꾸어 나열될 뿐, 웃어야 했던 바로 그 까닭이 어쩔 수 없이 연민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감성의 섬세한 집을 짓지 못한다.
흡혈형사의 좌충우돌 범죄 퇴치 이야기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뒤틀린 영웅의 이야기라는 영역으로 의미 확장을 시도하지만, 패러디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설정과 치밀한 이야기가 결여된 영화는 어정쩡하게 머무를 수밖에 없다. 에피소드들 간에 밀도 차이가 현저하게 드러나고, 필요 이상 영화가 비장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배우가 자신을 성공시킨 바로 그 이미지와 결별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김수로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이시명 감독. 상영 중. 15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