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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벌여놓고 보는 공공사업에 허리 휘는 국민

[사설] 벌여놓고 보는 공공사업에 허리 휘는 국민

Posted November. 15, 2005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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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이 추진한 500억 원 이상 투자사업의 반가량이 정책적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1999년 이 조사제도 도입 이후 총 129조 원 규모, 234건 가운데 금액 기준으로 49%인 63조 원 규모, 101건이 탈락했다. 일단 벌여놓고 보자는 식의 공공사업들이 예산 낭비의 시한폭탄을 전국에 깔아놓았던 셈이다.

탈락률은 2002년 이전 60% 선에서 이후 20%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이는 사업주체들이 타당성을 미리 잘 검토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종전엔 경제적 타당성을 따진 반면 2003년부터는 정책적 타당성을 중시해 점수를 후하게 준 덕분이다. 2003년 이후 조사를 통과한 79건 가운데 반가량은 종전 기준으로 따졌으면 비효율적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타당성 평가 비중을 경제성 4050%, 정책성 2535%, 지역균형발전 1525%로 바꿨다. 비효율적인 선심성 지역사업이 이 조사를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애매한 정치적 코드 때문에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옥석()을 가리기가 더 어려워졌다.

변칙과 편법도 많았다. 조사를 슬쩍 빼먹고 일단 예산을 투입해 사업을 벌이는 수법, 사업비를 500억 원 이하로 잡아 조사대상에서 빠진 뒤 사업비를 2배가량으로 올리는 수법 등이 그것이다. 735건의 대형 국책사업 가운데도 수차례 설계변경을 통해 사업비를 2배 이상으로 늘린 사업이 36건이나 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늘어난 사업비만도 28조 원에 이른다는 게 기획예산처 추산이다. 중앙정부, 지자체, 공기업 할 것 없이 혈세를 주인 없는 돈으로 여기고 요령껏 먼저 빼 쓰기 경쟁을 벌인 셈이다.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예비 타당성 조사를 도입했다면 비용과 산출을 더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이런 감시제도를 무력화하면서 정치적 계산에 따라 공공투자사업을 방만하게 확대한다면 기공식 잔치는 화려하겠지만 국민은 그 뒷감당에 허리가 더 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