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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 대통령의 끝없는 승부수 정치

Posted July. 29, 200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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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연정론() 속편을 또 내놓았다. 한나라당을 향해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이양할 테니, 지역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선거제도를 고치자며 국무총리 지명권과 내각의 일부를 넘기는 대()연정을 제의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어제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지역구도 해결을 위해서라면 실질적으로 정권교체까지도 해 주겠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는 지역구도 해결을 정치적 소명()으로 삼고, 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내줄 수 있다는 선언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깔린 승부수 선수()치기에 다름 아니다. 국정의 정도()를 걷고 경제와 민생을 살려냄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특유의 판 흔들기로 정권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술수()가 엿보인다.

노 대통령은 연정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여소야대() 구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결국 여소야대를 뒤집는 것이 연정의 궁극적 목표임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또 명분은 지역구도 해결이지만 요컨대 여당에 유리한 선거제도를 이끌어냄으로써 다수 여당으로 계속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실질적으로 무엇을 기여했는지,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 준다고 해서 당장 지역문제가 개운하게 풀릴 수 있다고 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충청권 신당 움직임에 비추어, 열린우리당의 열세가 뚜렷하기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판을 뒤집어보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는 심증을 지우기 어렵다.

그 자신이 한나라당도 당장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지만이라고 전제하는 것 자체가 정치공학적인 포석을 하고 있다는 증빙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실현 가능성 보다 정치공세에 무게를 두고 전술을 구사하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는 셈이다. 이런 행태야말로 국민이 노 대통령에게 실망하는 대목이요, 그의 도덕성을 의문시해온 이유다.

대연정 제안의 도박성이랄까 허구성은 뻔히 드러난다. 한나라당을 앞세운 연정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국회의석의 90%가 넘는 공룡()정권의 탄생을 의미한다. 세계 정당 정치사에 유례없는 연정방식일 뿐 아니라, 한국 정치에서도 10수년전 민정-민주-공화 3당이 합당해 민자당을 만들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정치지형의 인위적인 형질변경이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청산해야 할 잘못된 가치의 온상인양 매도해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실제로 양당(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실제 노선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합동의총()에서 정책토론을 하게 되면 당을 넘어 협력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고 말하니, 생각의 변화가 놀랍기까지 하다. 당장 열린우리당 안에서조차 노선갈등이 해소되지 않아 정책이 끊임없이 표류하는 상황이다.

양당의 대립성을 모두 녹여내고 기적 같은 연정으로 90%의석의 연립정당을 탄생시킨다고 해도 정치의 내용에 대한 합의 없이 단지 지역구도 해소라는 선거 절차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엄청난 혼란과 부작용이 올 것은 뻔한 일이다.

이런 현실적인 실효성의 문제 이전에 노 대통령이 제의한 임의적인 권력이양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국민이 헌법 절차에 따라 자신에게 준 권한과 책임을 야당에게 상당부분 넘긴다는 것은 법리적으로도 헌법정신에 반하는 국정의 방기()라고 볼 수도 있다. 권력 교체는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의해 국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마음대로 합참의장에게 군통수권을 넘겨 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행히 많은 국민은 노 대통령의 승부수법에 익숙해져 있고 어느 정도 내성()을 갖고 있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탄핵 횡재로 과반의석을 얻은 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보인 행보, 그리고 노 대통령의 지지도 추이를 국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번 제안은 386정치의 본색을 보여주는 듯한 생뚱맞은 모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