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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공양미 삼백 석

Posted May. 20, 200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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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의 입학시험 논술 문제다.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사례를 들어 자살의 유형과 해법을 제시하라. 수험생들이 어떻게 썼을지 알 길은 없지만 이런 내용의 답안도 있을지 모른다. 눈먼 아버지를 놔두고 혼자 죽는 게 과연 잘한 일인가. 확실하게 눈을 뜬다는 보장도 없다. 돌보는 사람이 없어 아버지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어떤 명분을 붙여도 자식이 부모를 두고 목숨을 버리는 것은 불효()다.

하지만 그런 식의 답안은 많지 않을 게다. 심청전은 우리에게 효를 상징하는 고전()이고 주인공 심청은 효녀의 대명사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용왕의 제물이 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그런 희생이 있어 마침내 심청은 왕비가 됐고 맹인 잔치에 참석한 아버지는 눈을 떴다. 소설 곳곳에 효를 강조하는 유교사상과 인과응보()의 불교사상이 흐른다.

심청전의 효 사상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는 곳이 전남 곡성군이다. 매년 가을 공양미 삼백 석 모으기 행사를 열고 모인 쌀을 팔아 이듬해 여름부터 60세 이상 시력장애 저소득 노인들의 개안()수술을 해 주고 있다. 행사 때면 공양미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쌀 대신 돈을 보내오는 주민이나 출향() 인사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마련된 기금이 1억4000여만 원. 지금까지 녹내장 백내장 등으로 고생하던 노인 500여 명이 빛을 찾았고 올해는 300명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쌀 개방 문제로 농민들이 많이 예민해졌지만 쌀은 우리에게 여전히 정()이 넘치는 식품이다. 사찰에는 늘 공양미가 넘치고, 누구나 담고 퍼 갈 수 있는 쌀독이 놓여 있는 성당도 적지 않다. 고향의 어머니가 차려 준 쌀밥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그런 쌀이 모여 이제 노인들에게 새로운 세상과 희망을 찾아 주고 있으니 참으로 마음이 넉넉해진다. 쌀 인심이 후한 사람, 당신은 이미 심청이다.

송 영 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