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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을 보면 권력이 보인다

Posted April. 01, 2005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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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시대

내가 함께 저녁을 먹지 않는 사람은 내게 야만인이다.

폼페이 벽화에 새겨진 낙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연회는 문명인과 반문명인을 구분해주는 기준 중 하나였다.

그리스 시대의 공공연회였던 심포지온은 남성들만의 술 파티였고 동성연애를 즐기는 장이기도 했다. 여기서는 앉는 자세가 서열을 구분하는 표시가 됐다. 어른은 카우치에 비스듬히 기댄 자세로, 젊은이들은 바로 앉아서 마셨다.

로마인들은 계급주의자였다. 황제는 공공연회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초대했지만 계급에 따라 음식에 차별을 두었다.

연회에 노예들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 깔끔한 용모의 노예가 음식을 한 입에 넣을 수 있도록 잘게 잘라줬다. 중세

기독교 수도자들의 식사도 호사스럽기 그지없었다. 겉으로 금욕적으로 보였던 수도원 식당의 공동식사는 어둠에 묻힌 시대의 전형적 만찬 중 하나였다. 예컨대 네발짐승의 살코기가 금지됐지만 요리사들은 오히려 멋진 해물요리를 창조해냈다.

10, 11세기에는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귀족의 상징이었다. 지주들은 수렵법을 제정해 농민들이 야생동물의 고기마저 먹지 못하게 했다.

기독교의 영향으로 탐식을 경계하면서 금식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프랑스 왕실의 식탁도 금욕의 규칙을 중시했지만 호사스러움을 버리지는 않았다.

중세 말기의 대표적 특징 중 하나가 앙트르메의 등장. 앙트르메는 원래 식사와 후식 사이에 나오는 먹을거리를 뜻했으나 들것에 실려 나올 정도로 웅장하게 바뀌었다.

르네상스와 절대왕정 시대

르네상스 시대에 식탁의 의미는 점차 바뀌어갔다. 플라티나의 책 올바른 쾌락에 대하여는 이를 대표한다. 중세에 쾌락이라는 단어는 죄에 버금가는 말이었지만 플라티나는 먹는 즐거움이 적절한 환경에서는 고결하고 올바른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식과 과음을 합리화시켰다.

이때부터 과일, 꽃, 눈부신 식기, 윤택한 음식을 풍요롭게 차려 모든 감각적 쾌락을 구현한 요리와 식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치를 과시하는 연회는 새로운 왕정시대에서 권력과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가 됐고 통치자를 찬미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혁명은 식습관을 포함한 인간의 행위와 욕구를 새롭게 정의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시대가 열리면서 식사는 과거의 화려한 의식과 상관없는 듯했다.

혁명 이후 계급에 따라 음식이 달라야 한다는 관념이 사라졌다. 이는 레스토랑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식당을 통해 뚜렷이 드러났다. 전에는 엘리트층만이 고급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돈이 있으면 누구나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미디어 시대에 무대와 은막의 스타, 팝스타, 패션 디자이너, 축구선수 등이 대우받으면서 이들의 식탁도 과거의 궁정을 방불케 한다.

왕궁, 귀족의 성, 부르주아의 저택에서 고급식당으로 옮겨갔을 뿐 식탁은 여전히 특권의식이란 사회적 열망의 지표로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원제는 Feast(2002년).



이철희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