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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벚꽃과 사쿠라

Posted April. 18, 2001 15:24,   

ENGLISH

벚꽃이 피고/벚꽃이 지네/함박눈 인양 날리네 깔리네. 벚꽃철 한 가운데서 한하운 시인의 한 구절을 생각한다. 흐드러진 벚꽃 아래서 깊은 숨을 들이 마시면 현기증 마저 인다. 벚꽃은 우리 머리를 아찔하도록 흔들어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갈증같은 것으로 온다. 구름같은, 아지랭이 같은 벚꽃은 우리의 생명에서 봄과 청춘을 가열하게 증발시키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손소희).

봄빛 가득히 젖은 산야, 거기 피어나는 노란 개나리, 붉은 진달래, 그리고 하얀 벚꽃. 봄은 그렇게 꽃들과 함께 여름을 준비한다. 그런데 벚꽃 만은 유독 또 다른 상념을 부른다. 산은 산이요, 꽃은 꽃일 터이다. 그런데 벚꽃은 사쿠라를, 그래서 일본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일본인이 그 꽃을 지독하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일순 봄을 물들이고는 한꺼번에 우수수 지고마는 사쿠라. 그들은 무사정신의 꽃이라고 찬탄한다.

태평양전쟁때 미군 함정을 향해 내리 꽂힌 인간폭탄(로켓추진기)의 이름이 사쿠라꽃이다. 이 가공할 황국의 무기가 야스쿠니진자()에 실물로 전시되어 있다. 그 야스쿠니 진자도 벚꽃을 배경삼아 화첩을 찍어 판다. 그곳은 태평양전쟁의 전몰자 위패가 대부분이니 한국 중국 미국의 눈으로 보면 전범()추모장 같은 곳이다. 사쿠라는 진자안에 나라꽃 국화()보다 인기 있는 황국의 꽃으로 핀다. 벚꽃 말고 사쿠라는 그래서 섬뜩한 핏빛이다.

일본어 사전에는 사쿠라(꽃)말고 또 다른 사쿠라가 나온다. 노점상과 짜고 물건을 팔아주기 위한 앞잡이, 청중인 체 하는 박수부대를 말한다. 우리 야당사에 나오는 사쿠라론의 뿌리다. 역시 찜찜한 이미지다. 이래 저래 벚꽃의 비롯한 상념은 엉망으로 일그러지고 만다. 오늘도 일본의 중학 역사교과서 왜곡은 바로 잡히지 않고 있다. 야스쿠니의 사쿠라꽃 사이로 참배객이 줄을 잇고 총리 후보들은 표를 겨냥해 앞다투어 야스쿠니 참배를 다짐한다. 사쿠라의 핏빛 공격성의 이미지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우리는 벚꽃을 그저 꽃으로 즐기고, 일본을 좋은 이웃으로 두고 싶다.



김충식 seesche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