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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만나다

Posted December. 29, 2020 07:28,   

Updated December. 29, 2020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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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신수(38·전 텍사스)는 반팔 차림이었다. 연신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이제 막 운동을 끝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텍사스에서의 7년을 포함해 16년간의 메이저리그 여정을 지나쳐 온 그는 한겨울 비시즌에도 변함없이 자기만의 루틴대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지내니까 좋다”면서도 “그런데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야구장이 더 편하다”며 웃었다. 내년 시즌 새 팀의 유니폼을 입을 날을 기다리며 미국 텍사스의 집에서 몸을 만들고 있는 그를 얼마 전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Zoom)을 통해 만났다.

○ 아드리안 벨트레를 말하다

 2000년 꿈을 찾아 태평양을 건넌 그는 미국에서 많은 것을 이뤘다. 7년 1억3000만 달러(약 1426억 원)짜리 대형 계약을 했고, 올스타전에 출전했으며, 52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그가 계속 현역 생활을 이어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너무 야구를 사랑하고,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꺼지지 않는 그의 열정은 올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9월 28일 휴스턴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른손 부상으로 제대로 스윙조차 할 수 없던 그는 3루수 방향으로 번트를 댄 뒤 1루로 전력 질주했다. 베이스를 밟은 뒤 중심을 잃고 나뒹구는 투혼 속에 안타 하나를 추가했다. 그는 “어린 선수들에게 야구장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경기 후 많은 선수들이 그에게 다가와 “앞으로 뼈가 부러지지 않는 한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전했다는 후일담도 소개했다.

 야구 인생의 종반을 향해 가는 추신수의 롤 모델은 텍사스 팀 동료였던 아드리안 벨트레(41·은퇴)다. 메이저리그에서 3166개의 안타와 477개의 홈런을 때린 벨트레에 대해 추신수는 “나는 벨트레처럼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다만 그처럼 유니폼을 벗는 순간까지 매 경기 모든 것을 쏟아붓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 류현진과 최지만을 말하다

 메이저리그에서 1652경기에 출전한 그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게 하나 있다. 바로 ‘꿈의 무대’ 월드시리즈다. 추신수는 2015년 팀이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면서 디비전시리즈(DS)에 진출한 적은 있지만 당시 토론토에 패해 탈락했다. 추신수는 “올해 탬파베이에서 뛰는 (최)지만이 월드시리즈 무대를 누비는 걸 TV로 봤다. 작년에는 (류)현진이가 LA 다저스 소속으로 월드시리즈에서 뛰었다. 나도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10월에 집 대신 꼭 야구장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여러 구단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도 ‘이기는 팀’이다. 그는 “돈을 더 받는 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출전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팀이면서 가을 야구를 노려볼 만한 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말하다

 올해 추신수는 야구장 밖에서 더 빛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야구장을 덮친 올해 4월 그는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그 선수 191명 전원에게 1000달러(약 110만 원)씩의 생계 자금을 지원했다. 각종 기부 및 선행으로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의 선행상이라 할 수 있는 로베르토 클레멘테상 30명의 후보에 포함됐다. 애덤 웨인라이트(세인트루이스)에게 밀려 수상하진 못했지만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이 상의 후보에 선정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그는 “나도 마이너리그에서 7년간 힘들게 야구를 했기에 선수들의 어려움을 잘 안다. 고민 없이 기부를 결정했고, 아내(하원미 씨)도 선뜻 동의했다”며 “상 욕심이 없지만 로베르토 클레멘테상만큼은 꼭 받고 싶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좋은 일을 많이 한 웨인라이트가 받아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다. 독자 여러분들도 내년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란다”는 새해 인사를 건넨 추신수는 바로 그 클레멘테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티셔츠에는 클레멘테가 생전에 했던 명언이자 추신수가 자신에게 얘기하고 싶어 하는 말이 적혀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사람인 것 같다.(When I put on my uniform, I feel I am the proudest man on earth)”


이헌재 uni@donga.com · 강홍구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