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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공약

Posted May. 06, 2017 08:05,   

Updated May. 06, 201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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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9월 30일 민주당 대선 후보 노무현은 충청 유세 도중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을 전격 발표했다. 대선이 불과 3개월도 남지 않은 때였다. 호남 민주당에 영남 후보였으니 충청 표만 잡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출입기자들도 전혀 낌새를 차리지 못했다. 이 공약으로 결국 여야가 극한 대치를 벌이고 국가적인 비효율을 양산했지만 노무현은 본인 표현대로 ‘재미 좀 봤다’. 우여곡절 끝에 세종시 건설 첫 삽을 뜬 것이 노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7월이었다.

 ▷대통령 선거 취재를 해보면 사실 정책은 뒷전이다. 대선 후보의 말실수나 네거티브 공방, 과거 언행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지 정책은 관심을 끌기가 쉽지 않다. 경제성장률 공약을 한쪽에서 6%로 잡으면 다른 쪽에선 “그러면 우리는 7%”라는 식이다. 군 복무 기간도 경쟁적으로 낮추고 복지수당을 마구 올리는 것도 즉흥적인 계산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다. 노무현의 행정수도 승부수는 수치 싸움이 아니라 기존의 판을 뒤흔드는 것이었기에 먹혀들었다.

 ▷정상적인 대선이라면 선거 공약은 대통령 당선 후 2개월 남짓 가동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재조정된다. “강을 건넜으면 무거운 뗏목을 버리라”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이때 높아진다. 공무원들이 세금 수치를 뽑아 공약을 100% 이행할 경우 필요한 견적서를 들이미는 것도 인수위에서다. 유권자들도 선거 때마다 속아봤으니 공약을 다 이행하려다간 나라가 거덜 날 것이라는 눈치쯤은 있다.

 ▷이번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은 인수위 없이 당선 직후 바로 청와대에 들어간다. 수십조 원이 들어가는 공약을 놓고 TV토론에서 공방을 벌였지만 급조한 공약은 믿을 게 못 된다. 공약으로 내게 어떤 이득이 돌아올지를 따지다간, 자칫 사탕발림 경쟁에 속아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토론 과정에서 드러난 말과 행동, 표정을 보고 신뢰가 가는 사람을 뽑는 게 속 편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공약을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게 한국 대선이다.




Young-Hae Choi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