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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어의 품격

Posted September. 02, 2016 07:17,   

Updated September. 02, 201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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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서양 정치의 발상지다. 아테네 시민은 이곳에 모여 연설을 듣고 토론을 하며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정치뿐 아니라 재판과 철학 등도 대화로 했다. 웅변가는 물론이고 연설문 작가들이 큰 인기를 누렸다. 기원전 4세기의 유명 정치가인 데모스테네스는 ‘모든 웅변가 중 군계일학’이라는 상찬을 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에 패한 뒤 망명길에 오르면서도 “만약 정치와 죽음 중 무엇을 택하겠는가 묻는다면 죽음을 택하겠다”며 말로 성공했던 지난날을 후회했다.

 ▷라디오와 TV가 별로 없던 시절 한국 정치에서도 웅변은 정치인의 주요 자질이었다. 청년 정치인 김대중(DJ)은 ‘동양웅변전문학원’을 직접 운영했다. 목포상업학교 때부터 웅변이라면 자신 있었던 DJ는 이 시기에 소리의 높낮이, 제스처, 원고 내용을 갈고닦았다. ‘리틀 DJ’로 불렸던 김상현도 이 학원에서 DJ를 처음 만났다. 김상현은 웅변 실력으로 야간 고교 중퇴의 학력을 극복하고 국회에 입성했다.

 ▷서울대 2학년 때 웅변대회 2등을 차지했던 김영삼(YS)은 ‘위대한’을 ‘이대한’으로, ‘경제’를 ‘갱제’로 발음해 많은 청중의 실소(失笑)를 자아냈다. 하지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투박한 한마디로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 불을 질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이던 2006년 일본을 방문해 당시 최대 현안이던 독도 문제를 질문받았다. 그는 “전혀 어려울 것도 복잡할 것도 없다. 독도는 한국 땅이니 일본이 그걸 인정하면 된다”고 답해 질문한 일본 기자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낸 윤태영 씨가 ‘대통령의 말하기’를 펴냈다. 노 전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이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고은 시인은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다”라고 지탄한 바 있다. 요즘 정치는 웅변보다는 토론이 중요하고 말 못지않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에서 막말 욕설 동문서답이 횡행하며 말의 품격이 추락하고 있다.

이 진 논설위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