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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쥐덫’의 오류

Posted July. 09, 2016 07:25,   

Updated July. 09, 2016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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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랠프 월도 에머슨은 19세기 중반 미국이 공업사회로 진입하던 시기에 활약한 시인이다. 그가 언급한 ‘더 좋은 쥐덫’은 혁신의 힘을 상징하는 은유로 널리 쓰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며 에머슨의 말을 인용해 “‘더 좋은 쥐덫’을 만든다면 당신이 외딴 숲 속 한가운데 집을 짓고 산다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당신의 집 문 앞까지 반들반들하게 길을 다져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하자면 더 좋은 쥐덫을 만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그 다음 말이 모든 걸 망쳤다. 박 대통령은 “미국의 울워스라는 쥐덫 회사는 한번 걸린 쥐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 예쁜 모양의 플라스틱 쥐덫을 만들어 발전시켰다”며 최고의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울워스사의 쥐덫은 성공적인 혁신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실패한 혁신의 대명사였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더 좋은 쥐덫의 오류’라고 부른다.

 ▷에머슨이 1882년 죽기 전에 실제 ‘더 좋은 쥐덫’을 언급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상용 쥐덫은 그가 죽은 뒤에 사용됐다고 한다. 사후 그의 책 수정본에 끼워 넣은 말일 수 있다. 아무튼 그의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 발명가들이 앞다퉈 쥐덫을 개량하는 바람에 쥐덫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특허가 나온 상품으로 미국사에 기록됐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실패한 혁신이었다.

 ▷울워스사는 기존의 칙칙한 나무 쥐덫과는 달리 장난감 완구 못지않게 예쁜 쥐덫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지만 곧 문제가 드러났다. 기존 쥐덫은 쥐와 함께 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예쁜 쥐덫은 쥐와 함께 버리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쥐만 버리고 씻어 쓰기에는 찝찝한 상품이 되고 말았다. 10년 넘게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써 왔던 조인근 연설기록비서관이 최근 사임하자마자 터진 해프닝이다. 실수가 있었지만 혁신을 강조한 진의는 전달됐다고 본다. 바라건대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가 울워스사의 쥐덫 꼴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