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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의 존 케리 미 국무장관

Posted April. 12, 2016 07:16,   

Updated April. 12, 2016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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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틀 보이.’ 세계사를 바꾼 최초의 원자폭탄 이름이 얄궂다. 1945년 8월 6일 오전 미국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기장 폴 티베츠의 어머니 이름)는 히로시마 시내에 길이 3m, 무게 4.36t의 우라늄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TNT 13kt 위력의 원폭이 지상 580m 공중에서 터지면서 버섯구름 아래 모든 것이 지옥이 됐다. 7만∼8만 명이 즉사했고 7만여 명이 부상했다. 건물의 69%는 잿더미가 됐다. 일본이 곧바로 항복했더라면 8월 9일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원자폭탄 ‘팻 맨’이 떨어지는 비극을 막았을 것이다.

 ▷당시 ‘그라운드 제로’에서 약 160m 떨어진 히로시마 산업장려관의 돔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 건물 잔해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으로 명명돼 반핵·평화운동의 상징이 됐고 1996년엔 미국 중국의 반대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그 앞을 흐르는 모토야스가와 강을 끼고 원폭의 참상을 일깨우는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이 일대에 조성됐다. 한쪽엔 2만 명에 이르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비도 있으니 우리에겐 역사적 의미가 무겁다.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어제 이 공원을 찾아 원폭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했다. 미국은 원폭 투하는 종전을 위해 불가피했으므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취해 왔다. 케리 장관이 “이번 방문은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다”며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것”이라고 한 것도 사안의 민감성 때문일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다음 달 G7 정상회의 때 이 공원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지만 미국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하며 세계 유일의 원자탄 피폭 국가라는 점만 부각시키는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처럼 구는 것이어서 공감하기 어렵다. 다만 핵 참화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상기하며 핵 확산 방지를 위한 지구의 연대를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폭발력이 증대된 핵폭탄이 사용된다면 히로시마의 몇백 배가 넘는 참극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