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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는 표현이 난무하는 외교 무대

Posted February. 11, 201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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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 No(아니다)라고 말하면 No, Yes(그렇다)라고 하면 Yes다. Maybe(아마)라고 말하면 군인이 아니다. 외교관이 Yes라고 하면 Maybe, Maybe라고 하면 No다. No라고 하면 외교관이 아니다.

외교의 세계에서 회자되는 경구의 하나이다.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외교관의 어법을 설명한 말이다. 정상회의가 빈번해진 최근 국제 외교무대에선 No라는 말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한 표현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뒤 주일 미국대사관은 실망(disappointment)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고위급 외교관인 해외 주재 중국대사 40여 명은 전 세계에서 아베 총리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국수주의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 아베 총리의 일방적인 행보는 하루를 멀다하고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아베 총리의 행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무엇보다도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의 급격한 변화라는 환경적 요인이 가장 큰 배경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는 현상 유지의 틀을 유지해왔다.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고 문서화된 것도 아니지만 외양상 묵시적 합의로 지켜왔다. 이런 현상 유지는 일정한 평화 상태를 이끌어 온 장치였다. 한중일 3국이 세계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로 성장한 것도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에서 의견을 모은 것도 이런 질서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틀은 2012년 일본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국유화하고, 중국이 지난해 11월 동중국해 일대에 방공식별구역(ADIZ)을 일방적으로 설정하면서 깨질 위기에 처했다.

헨리 키신저 박사는 저서 회복된 세계에서 고전적 의미에서의 외교, 즉 협상으로 차이점을 조정하는 행위는 정통성 있는 국제질서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 성격이 묵시적 합의일지라도 동북아의 기존 질서는 정통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이 이 틀을 깨는 새로운 규칙을 내세우는 상황에선 전통적인 의미의 외교가 설 자리가 좁아진다. 그런 점에서 중-일 양국은 키신저 박사가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세력이라는 의미로 규정한 팽창적(acquisitive) 국가의 범주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팽창적 세력의 힘이 투사되는 동북아의 현존 질서가 유지될지, 아니면 변혁적 상황으로 이어질지 예단하기는 힘들다. 분명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띤 9일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마스조에 요이치() 전 후생노동상이 승리함으로써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는 지속될 여지도 커졌다.

그렇다면 출구가 보이지 않는 동북아의 난제를 풀기 위해선 어떤 작업이 필요할까.

나름대로 국내적 입지를 굳히는 아베 총리의 움직임을 감정적으로만 대하고 한일관계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중국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은 장기적인 한국의 외교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시기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법이다.

한국 중국 일본 관련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을 내세운 미국이 참여해 새로운 질서를 대화로 풀어가는 새로운 협의체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말하는 즉시 실무자들을 옥죄는 정상 간의 외교보다는 Yes에 익숙한 외교관들에게 새로운 틀을 만들 창조적 외교의 장()을 맡기는 것이 충돌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