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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병영체험, 잊지못할 한국의 추억

Posted December. 17, 201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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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 앞으로 뛰어 엎드려.

한국어 영어 중국어가 뒤섞인 동료들의 고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파키스탄에서 온 사이드 무하마드 씨(25한양대 국제대학원)는 드럼통 뒤에 몸을 숨긴 채 대항군을 향해 총을 조준했다. 그에게 남은 총알은 20여 발. 30여 명이던 대항군은 10여 명으로 줄었지만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총알이 날아들었기 때문에 그는 30여 m 앞에 있는 적진으로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14일 오후 경기 파주시 군내면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 내 옛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 푸른색, 붉은색의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외국인 학생 60여 명이 모의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두 팀으로 나눠 상대방의 진지를 먼저 점령하면 이기는 게임. 실제 총알 대신 페인트 볼을 사용했고 1인당 50발 정도 쏠 수 있다. 이날 모의전투는 실제 전투를 연상시킬 정도로 내내 긴장감이 돌았다.

경기도와 파주시, 경기관광공사는 6개월여 동안 리모델링을 한 뒤 이날 처음으로 체류형 안보체험시설로 바뀐 캠프 그리브스를 공개했다. 캠프의 절반 정도인 11만7000여 m를 체험장으로 꾸몄다. 국내 24개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대학생과 대학원생 120여 명이 이날 1박 2일 일정으로 안보체험에 참가했다. 안보체험 캠프가 만들어진 뒤 첫 입소자들이다.

서울, 수원 등지에서 버스로 23시간을 달려온 이들은 대부분 13년 정도 한국에 머물러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캠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장난기 많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캠프에서 지급받은 신형 디지털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어색했는지 웃음을 짓기도 했다. 강당에서 입소 신고를 마치고 점심 식사는 줄을 서서 각자 식판에 배식을 받았다. 미군 막사를 개조해 만든 내무실에 짐을 풀고는 막사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이들은 15일까지 모의전투와 비무장지대(DMZ) 모양의 초콜릿 만들기, 나라사랑 콘서트레크리에이션, 조별 장기자랑, 취침기상 점호를 체험했고 제3땅굴, 도라전망대, 통일촌 등을 둘러보며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직접 체험했다.

리투아니아에서 온 크리스티나 씨(23여아주대 교환학생)는 60년 전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숙연해졌다며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민통선 안에서 1박 2일 동안의 병영 체험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대 안에는 미군이 쓰던 50년 넘은 생활관과 체육관, 탄약고, 장교 숙소, 수영장 등 미군이 쓰던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비닐하우스 모양의 반원형 함석지붕을 인 퀀셋 막사도 원형 그대로 잘 보전됐다. 캠프 그리브스는 임진강 북쪽 민통선 너머에 자리한 유일한 미군기지였다. 남방한계선에서는 고작 2km 떨어진 곳. 625전쟁 직후인 1953년 7월부터 미군이 주둔했고 2004년 미군이 철수한 뒤로 10년 가까이 비어 있었다.

내년 2월 말까지 10회 정도 시범 운영을 한 뒤 초중고대학생, 일반인, 단체 등을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나 일정은 추후에 공지할 계획이다. 참가비는 성인 8만5000원, 학생 7만5000원 수준(1박 2일 기준버스비, 식대 포함).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