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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항목 100점 기업인-차관도 은퇴준비 총점은 65점 그쳐

재산항목 100점 기업인-차관도 은퇴준비 총점은 65점 그쳐

Posted October. 15, 2012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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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19551963년 생)인 류필계 LG유플러스 대외협력전략실장 부사장(56)과 이상길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54). 두 사람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부러워할 만한 기업가이고 공무원이다. 이들의 은퇴 후 재무 준비는 완벽에 가깝다. 그렇다면 류 부사장과 이 차관이 은퇴 후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부사장차관 Vs 관리소장

류 부사장의 재무준비지수는 100점, 이 차관은 82.5이다. 두 사람 모두 평균인 51.5점보다 아주 높다. 자산은 이상길 차관이 11억 원(공직자 정기재산 총액)이고 류 부사장은 이보다 더 많다.

그러나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와 서울대 노년은퇴설계지원센터가 재무 이외 요인들을 점검한 결과 이들의 실제 은퇴준비 종합지수는 그리 높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류 부사장의 은퇴 종합준비지수는 65.4점, 이 차관은 64.9점이다. 평균인 58.3점과 큰 차이가 없었다.

류 부사장은 은퇴 후 무엇을 할지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일거리 준비지수는 46.0으로 평균 51.1점보다 낮았다. 류 부사장은 지금 하는 일이 매우 만족스럽다면서 은퇴 후 일거리에 대한 계획은 아직 없다고 답했다.

이 차관은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여가 준비지수는 46.3으로 평균 56.1점보다 낮았다. 이 차관은 월 한, 두차례 주말 등산을 다니고 가끔 퇴근 후 집 근처 산책로를 부인과 함께 걷는다. 특별히 좋아하는 취미활동은 없다. 지금의 여가활동 재미도 그저 그런 편이라고 답했다.

문인선 씨(55)는 강원도 원주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이다. 그의 자산은 1억5000만 원짜리 아파트 한 채와 두 아들을 위해 마련한 소형 아파트 2채(총 1억6000만 원), 저축 일부가 전부다. 노후를 위해 온전히 쓸 수 있는 돈은 약 2억 원 안팎. 이번 설문 응답자 평균인 2억 이상 3억 미만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문 소장은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다. 그는 1998년 소령으로 예편한 뒤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직업을 바꾸고 주말마다 부인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배드민턴 대회에 참가한다.

소령 예편 직후 군대에서 수송장교로 근무한 경력을 살려 9년 간 택시를 몰았지만 똑같은 일상이 너무 지겨워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50세에 주택관리소장이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해 5개월 만에 합격했다. 은퇴 전에는 테니스를 즐겼는데 부인과 함께 할 운동거리를 궁리하다 배드민턴으로 종목을 바꿨다.

문 소장은 주중엔 일하고 주말엔 배드민턴을 치러 간다며 얼마 전에서 횡성 한우배 배드민턴 대회를 다녀오면서 그 지역을 여행하고 먹거리까지 경험하고 오니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바빠서 준비할 시간 없어

류 부사장과 이 차관은 일거리(류 부사장)여가(이 차관) 준비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자 이구동성으로 미처 시간이 없었다고 항변했다. 류 부사장은 언제 은퇴할지 모르지만 아직 여유가 있기 때문에 (다른 바쁜 일을 제쳐두고 은퇴 후 일자리를) 알아볼 필요를 아직 못 느낀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매일이 바쁜데 은퇴 후 여가취미까지 생각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후 일거리 준비가 미흡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류 부사장처럼 은퇴하려면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은퇴 시기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은퇴를 맞는다며 계획보다 빨리 맞이한 은퇴 때문에 준비가 미흡하게 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여가취미 준비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한주형 FMI연구소장은 은퇴 후 우울해 하는 베이비부머들에게 앞으론 본인이 즐거운 일을 해라고 조언하면 뭘 하면 좋을까라고 되묻는 사람이 많다며 회사형 인간으로 살다보니 여가를 즐길 수도 생각할 시간도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가취미에 대한 열망은 높은 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부머들이 노후에 원하는 것은 젊어서 하지 못한 취미생활을 하는 것(42.3%)이었고, 여가취미가 소득을 위해 일을 하는 것(16.8%)보다 두 배 이상이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삼성생명이 재무 준비가 평균 이하라도 은퇴준비 종합지수가 상위 30%인 사람 94명을 분석한 결과 일과 주거, 건강 준비지수가 평균보다 13점 이상 높은 점이 눈에 띄었다. 주거가 안정적이고 일거리도 있고 건강도 좋다는 의미다.

94명의 총 자산 수준은 2억 원 미만이 53.8%로 설문자 평균(45.35%)보다 낮다. 이들은 집값과 생활비가 비싼 서울수도권보다 부산 광주 대전 등 지방도시에 살면서 고정비 지출을 줄였다. 자산은 좀 적지만 월 소득과 소비는 설문자 평균과 비슷하게 유지해 상대적 풍족함을 유지했다. 직업별로는 정규직 근로자보다 자영업 고용주나 단독 자영업자가 많았다. 이들은 건강에도 만족한다. 건강이 매우 좋다고 답변한 이가 11.7%로 평균(4.11%)보다 많았고 좋다도 73.4%로 평균(50.11%)를 훌쩍 넘었다.

고혜진 삼성생명 수석연구원은 재산은 많지 않지만 건강하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며 재산 대신 다른 요소들을 대체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어 행복하고 활기찬 노후를 맞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어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족나라회사를 위해 평생 일해 온 많은 은퇴자들이 어느 순간 나는 왜 사는지 모르겠고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내 역할이 사라지고 친구도 없다고 우울해 한다며 일자리여가 준비도 은퇴 후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미리 해야 여유있는 노년을 맞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현지 문병기 nuk@donga.com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