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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한식을 더 빨리 알았더라면

Posted November. 02, 2011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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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그는 기억 속 어렴풋한 풍경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신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했다. 34년 만에 밟는 고향 땅이었다. 1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만난 그의 성은 드장브르. 이름은 상훈이다.

올해 마흔두 살인 그는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벨기에로 입양됐다. 두 살 어린 남동생과 함께였다. 태어난 곳은 경남 밀양이다. 낳아주신 부모님 소식은 아직 모른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어려서부터 음식이 좋았다. 배곯으며 산 건 아니지만 먹는 걸 좋아했다. 새로운 맛에 호기심이 많았다. 18세가 되면서 일을 시작했다. 먹는 걸 좋아했으니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서빙했다.

그렇지만 죽을 때까지 음식만 나를 수는 없었다. 와인을 배웠다. 그는 지리학과 화학, 생물학 등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 와인 소믈리에로 전향했다며 8년 동안 와인 소믈리에로 활동한 뒤 1997년 직접 레스토랑을 차리고 와인에서 나는 향을 요리에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키워주신 벨기에 부모님과 칠레, 브라질, 프랑스에서 함께 입양된 형제들이 그의 손님이 됐다.

그렇게 문을 연 레스토랑이 세계적인 레스토랑 안내서 미슐랭가이드에서 별 2개를 받은 레르 뒤 탕이다. 셰프를 고용하느니 차라리 직접 음식을 만들자고 나섰던 그는 이제 분자()요리로 벨기에를 넘어 세계적인 셰프가 됐다. 분자요리는 물리와 화학 법칙을 바탕으로 액체질소와 초음파 등 혁신적인 기술을 요리에 접목해 새로운 맛을 내는 방식이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2009년 주벨기에 한국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 한식()을 소개해 주고 싶다고 했다. 입양 뒤 첫 방한이었다. 그때 한식을 제대로 처음 접했다. 그는 벨기에로 돌아와 보쌈과 육회, 오미자차 등을 유럽인의 입맛에 맞게 바꿔 새롭게 선보였다며 지난해부터는 한식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4일까지 롯데호텔, 인터컨티넨탈호텔을 비롯한 서울 주요 호텔 등에서 열리는 서울 고메 2011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그를 포함해 미슐랭 가이드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은 스페인의 호안 로카 등 정상급 셰프들이 참가하는 이 행사는 한식 세계화를 목적으로 2009년 시작돼 이번이 3회째다. 그는 3, 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된장 드레싱을 한 참치요리, 한국식 생선수프 등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더 빨리 한식과 만났다면 벨기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국 음식을 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며 14세, 11세 된 두 딸에게 한국 음식을 자주 해주고 한국 얘기도 많이 들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헌 hpar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