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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가니 법

Posted October. 08, 201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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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에는 대개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를 적용한다.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지만, 가해자가 고소 취하나 감형을 유도하는 방편으로 악용해 논란을 빚었다. 성폭력특례법 6조는 신체정신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를 이용해 간음추행한 자를 형법상 강간강제추행에 준해 처벌한다. 그러나 법원이 항거불능을 심리적물리적 반항이 절대 불가능한 경우로 너무 엄격하게 해석하면서 자기방어 능력이 부족한 장애인 대상 성범죄자가 무죄 판결을 받는 일이 많았다.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라는 법의 취지가 무색하다.

정부가 어제 장애인 대상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청각장애아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자 정부가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다. 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를 폐지하고, 항거불능을 요하지 않는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을 추가해 범죄의 범위를 확대했다. 장애인 강간죄의 법정형도 3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강화했다. 법제정 경위에 비춰 도가니 법이라는 이름을 붙일만하다.

2007년 10살 혜진이와 8살 예슬이 유괴살해 사건이 벌어지자 법무부는 아동 성폭행 살해범을 사형이나 무기징역으로 엄벌하는 일명 혜진예슬이법을 제안했다. 2009년 8살 나영이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은 청소년 성폭행 사건의 친고죄를 없애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2월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길태 사건 이후엔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를 소급 확대하는 법이 시행됐고,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 법안도 통과됐다. 나영이의 부친은 최근 아동 대상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다.

사회적 충격파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새로운 법을 급조하고 땜질 처방에 급급 하는 건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대증요법()이다. 기존 법을 염격히 적용하면서 장기적 안목에서 보완해 가는 게 바람직하다. 성범죄자에 대한 꾸준한 치료와 관찰로 재범률을 떨어뜨리는 노력이 중요하다. 최근에 성폭행 범죄가 늘어나는 사회적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고찰과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이 형 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