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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못찾는 사막의 허브 조감도엔 먼지만

출구 못찾는 사막의 허브 조감도엔 먼지만

Posted October. 19, 201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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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뿌옇게 쌓인 조감도에서 거대한 야자나무 모양의 인공 섬을 보지 않았다면 이곳이 1년 전 세계에서 상상력의 극치라 찬사를 받았던 팜 데이라 현장임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11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팜 데이라 건설 현장. 4635만 m나 되는 바다를 매립해 세계 최고급의 관광레저 시설과 고급 거주지를 만들려고 했던 이곳에는 개발의 굉음 대신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약간의 용지 조성 및 매립 공사만 진행되고 각종 건설 기기들은 먼지가 쌓인 채 멈춰 서 있었다. 공사 자재들도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엉켜서 내는 소리만 요란했다.

팜 데이라에서 자동차로 약 40분을 달려 도착한 두바이랜드 건설 현장. 사막 한가운데 디즈니랜드의 약 8배 크기의 세계 최대 테마파크를 만들겠다는 현장에는 놀이기구, 동물원, 쇼핑몰, 호텔 같은 테마파크용 시설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두바이랜드라고 적힌 간판을 달고 있는 커다란 입구만이 이곳이 그냥 버려진 사막이 아님을 알게 해줬다.

지난달 26일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두바이 통치자는 미국 켄터키 주에서 열린 한 승마대회에 참가해 우리(두바이)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25일 방만한 개발전략으로 자금난을 겪던 두바이 재무부가 최대 국영 회사인 두바이월드와 자회사 나힐의 채무 상환을 6개월간 유예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터진 이른바 두바이 쇼크에서 마침내 탈출했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둘러본 두바이의 세계 최초, 세계 최고 개발 프로젝트 현장들은 아직도 그 쇼크의 신음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원칙을 무시한 무리한 개발 반성

두바이는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따르지 않았다. 혁신적인 개발전략과 비전을 제시한 뒤 외부에서 투자를 끌어와 인프라를 공급하면 수요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장밋빛 생각만 했던 것이다.

중동의 대표적인 싱크탱크 중 하나로 꼽히는 걸프리서치센터(GRC)의 사미르 프라단 수석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두바이가 이룩한 성과가 결코 모래성은 아니지만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고 두바이는 지나치게 파격적이었던 개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바이 시내 한 고층빌딩의 11층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 창문 너머로도 많은 대형 공사장이 보였다. 그중 상당수는 크레인이 멈춘 공사장이었다.

두바이의 대표적인 초고층 빌딩 밀집 지역인 비즈니스 베이는 위기 탈출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다양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빌딩 건설 현장의 상당수가 멈춰 있었다. 국내 한 건설사가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즈니스 베이에서 현재 공사가 시작된 건물은 총 115개이며 이중 57개(49.6%)가 공사 중단 상태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공사 계획은 있지만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건물도 100개 정도 된다며 두바이 정부는 원래 20122013년경 비즈니스 베이 지역의 상당 부분을 완성하려고 했지만 지금 상태로는 언제 완성될지 예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지 대형 시중은행인 아부다비국립은행(NBAD)의 기야스 고켄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두바이가 관광문화 산업과 대형 부동산 개발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개발 속도와 규모, 특히 안정적으로 개발을 추진하는 방식에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뒤늦게 깨달은 법치와 투명의 중요성

두바이 쇼크가 터진 뒤 두바이의 개발 전략만큼 행정 절차와 정부의 투명성 등도 자주 도마에 오르고 있다. 두바이가 잘나가던 시절에는 자주 거론되지 않았지만 위기가 터지면서 국제적인 허브로 성장하기에는 세계 표준에 못 미치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은 정부가 경제 성장률, 부동산 가격 추이, 부채 비율 같은 기본적인 경제통계 자료조차도 정기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데 두바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일부 경제통계는 아예 작성도 하지 않는다. 두바이 정부가 진행하는 각종 개발 프로젝트들의 현황 및 향후 계획 역시 주기적으로 발표하지 않는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회사인 CBRE의 매튜 그린 리서치팀장은 두바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경제통계를 구하는 길은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라며 투명성 부족은 두바이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KOTRA두바이KBC센터 관계자는 각종 행정 절차와 업무 진행 방식이 다른 중동권 국가들보다는 합리적이고 신속한 편이지만 전반적인 수준은 아직도 세계 표준에 크게 못 미친다고 말했다.

두바이 정부 관련 기관들도 투명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두바이 금융감독청의 폴 코스터 청장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두바이 정부의 투명성이 세계 표준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라며 두바이는 이번 위기를 계기로 경제지표와 정책의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했고 이를 개선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자 혼자 뛰어서는 경제발전은 어려워

그러나 최근 위기를 겪으며 두바이 곳곳에서는 성숙해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이제 두바이는 창의력과 혁신이란 미명 아래 일단 벌이고 보자 식의 무리한 프로젝트 추진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현지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알 옴란 씨(33)는 절대로 2000년대 초중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게 위기의 교훈이라며 도전적인 개발을 경험해본 만큼 이제는 안정적인 개발을 경험해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현지인들 사이에선 두바이의 경제와 사회 구조가 지닌 약점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도 시작됐다. 특히 150만 명의 인구 중 약 20%에 불과한 순수 두바이인들이 정부 지원금만 받아가며 제대로 된 일도 하지 않으며 편안하게 사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두바이 최대 신문사인 걸프뉴스의 경제담당 에디터인 사이푸르 라만 씨는 행정이나 언론 같은 사회 핵심 섹터에 지나치게 인재가 부족하다며 정부에서도 이런 점을 인식해 최근 교육열을 높이고, 국가 차원에서 사회 핵심 영역에서 활동할 엘리트들을 양성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세형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