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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 담판 노려남 사정 안중에 없었다

Posted May. 26, 2009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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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5일 오전 6시경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들에게 조의()를 표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이에 정부 안팎에선 북한이 조문단 파견 등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꾀하는 것이 아니냐는 희망 섞인 관측들이 나왔다. 그러나 북한이 오전 10시경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정부 내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북한은 왜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남한 전체가 애도 기간 중인데도 2차 핵실험을 강행했을까.

북한 지도부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핵실험을 통해 최대의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했을 것이 분명하다. 남한 정세까지 감안해 택일()을 했다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전 세계가 남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을 활용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전 세계에 자신들이 핵보유국임을 과시하면서 국제적 관심을 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은 핵실험 이후 조문단 파견을 제의해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등 한국의 서거 정국을 이용하려 할 수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핵실험에 따른 여론의 비난이 비등한 상황에서 북한 조문단이 방한하는 것은 경호상의 문제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정부가 북한 조문단의 방한을 불허하면 이를 놓고 한국 내부에 논쟁이 벌어지기를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북한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우연하게 조성된 한국 내 정부 비판 기류를 감소시킬 것이 분명한 핵실험을 일부러 했겠느냐는 반론도 따른다. 일각에선 당장 북한이 난데없는 핵실험으로 가뜩이나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론이 비등할까 전전긍긍하는 이명박 정부를 도와주는 형국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 등 대외적 효과를 겨냥해 시기를 결정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지하핵실험을 위해선 땅속에 많은 케이블과 계측장비를 설치하는 등 치밀한 계획에 따라 철저히 준비하고 실행해야 한다며 남한 정세는 꼭 고려해야 할 변수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 데이를 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2006년 북한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한국 시간 5일)에 맞춰 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했고 콜럼버스 데이인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신석호 윤상호 kyle@donga.com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