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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수감자 사망하면 시신 훼손까지 시켜

Posted May. 22, 200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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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찬미, 데보라, 나오미, 다니엘, 한나(모두 가명).

자유와 희망을 찾아 북녘의 고향 땅과 부모 형제를 등지고 중국 땅을 떠돌다 동남아 제3국을 거쳐 보름 전 최초로 미국에 망명한 탈북자들이다. 미국 내 안전시설에 머무르고 있던 탈북자 6명은 16일부터 워싱턴을 방문해 자신들의 미국행을 도와 준 인사들을 만났다. 본보 취재진이 이들의 워싱턴 체류 일정 중 일부를 동행 취재했다.

한국 언론은 본보가 유일했고, 미국 LA타임스와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동행 취재에 참여했다. 동행 취재는 이들의 미국 망명을 가능하게 도와 준 허드슨 연구소와 두리하나 선교회 천기원 목사의 협조로 이뤄졌다.

6명 모두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었다. 찬미(20) 씨의 사연은 특히 충격적이었다.

15세 꽃다운 나이에 처음으로 고향 땅인 함경북도 회령을 등진 그는 지난 5년 동안 누구도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과 질곡의 세월을 지냈다.

3남 1녀의 막내인 그는 2001년 처음 두만강을 건넜다. 이후 탈북 4번, 감옥살이 2번. 두 번째 수감됐을 때는 3년형을 받고 1년 7개월을 복역했다. 중국에서는 2만 위안(약 300만원)에 회족()에게 팔려가 강제로 결혼까지 했다.

그는 강제로 북송됐다가 평안남도 증산군 제11호 교화소에 수감됐으며 이 교화소의 여성 수감자 9명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라고 했다.

이 교화소에서 같은 방에 수감됐던 한 여성은 영양실조로 온몸이 퉁퉁 부어 숨졌다. 다른 여성은 구타당해 싸늘한 시체로 죽어 나가는 걸 봤다. 찬미 씨는 지난해 노동당 창건 60주년 기념 사면으로 풀려날 때 나머지 8명이 모두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며 울먹였다.

더욱 충격적인 증언은 형기를 못 채우고 죽는 죄수의 뼈를 부러뜨리는 관행이었다. 교화소에 있다가 죽으면 죄 값을 다 못하고 죽었다고 시체의 목과 팔을 삽으로 부러뜨려 파묻었어요.

천 목사는 찬미 씨가 미국에 도착한 뒤에도 한동안 때리지 마세요 훔쳐 먹지 않을게요라는 잠꼬대를 했다고 전했다.

18일 미국인 가정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찬미 씨는 피아노로 고향의 봄을 쳤다. 어릴 때 손풍금(아코디언)을 배웠다고 했다.



권순택 김승련 maypole@donga.com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