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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스트라이커 이동국

Posted April. 17, 200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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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초대로 분데스리가 경기 관람

좌절하지 않습니다. 더 크게 쓰이기 위해 잠시 한 발짝 멈추게 된 것 같습니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러나 눈은 붉게 충혈 돼 있었다. 마음이 뒤숭숭한 데다 시차가 겹쳐 잠을 못 이룬 탓이라 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부근 오펜바흐의 스포레크 재활센터에서 오른쪽 무릎 전방십자인대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고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불운의 스트라이커 이동국(27포항 스틸러스).

15일 저녁(현지시간)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숙소로 돌아온 그를 만났다.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뛰는 차두리의 초대로 프랑크푸르트-마인츠의 프로축구 경기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두리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더니 십자인대가 완전히 끊어졌다니까 말을 더 못 잇더군요. 아쉽다고, 그 말 한마디뿐, 안쓰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는 오른쪽 다리를 절룩이며 자리에 앉았다. 지켜보던 매니저 이영중 씨(이반스포츠 대표)가 다리를 올려놓으라며 의자를 하나 더 끌어왔다. 이동국은 통증이 있다며 19일 수술을 앞두고 부기를 빼는 마사지와 전기치료를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단을 받았을 때도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결과였다. 불과 넉 달 전 결혼한 부인 이수진 씨도 수술을 받고 완치해 선수생활의 생명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겠느냐며 그를 위로했다.

다만 그렇게 온 힘을 쏟았는데라는, 아쉽다는 생각은 떨쳐내기가 힘들다.

지난번 월드컵 이후 2년간은 계속 바닥까지 추락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뒤로 차츰차츰 밑바닥을 다져서 독일 월드컵에 대비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음 월드컵까지 다시 4년, 한없이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겠죠.

#프랑크푸르트서 열리는 첫 상대 토고전 꼭 볼래요

그는 19일 수술을 받은 뒤 6개월 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재활훈련을 받게 된다. 빠르면 4개월, 오래 걸리면 1년이 될 수도 있다. 마음껏 꿈을 펼쳐보려 했던 월드컵의 무대 독일에 와서 국외자의 입장으로 경기를 지켜보게 된 것이다. 우리 대표팀의 첫 경기인 토고전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니 그 경기만큼은 보러 가야겠지요. 뛰지는 못하겠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한몫을 했으니까요.

그에게 고국에서 선배 황선홍이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좌절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비로소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황 선배하고는 많이 비교가 돼왔죠. 불운까지 따라가는 듯해서 신경쓰이네요.(웃음) 제가 좀더 나이가 어린 점이 위안이죠.

황선홍은 30세 때 부상으로 프랑스 월드컵에서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34세 때 맞은 2002년 월드컵에서 노장의 투혼을 발휘했다. 4년 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이 열릴 때면 이동국은 31세가 된다.

#황선홍 선배처럼 다시 일어날 겁니다

그에게 손실이 크지만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더라고 운을 띄워봤다.

한국 축구는 개인기와 스타성보다 팀워크로 똘똘 뭉친 축구예요. 이동국 하나가 없다고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팬들에게 죄송할 뿐이죠. 혹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다린 분들이 많았는데 실망을 드렸습니다. 고국에서 저를 응원해 주시는 목소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마음의 빚이 늘어가지만 그만큼 언젠가는 꼭 팬들께 갚아드리겠다는 각오도 점점 더 다져가고 있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