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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저작권

Posted January. 17, 200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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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정래씨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 3편으로 1000만권 이상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대표작 태백산맥은 550만권이나 팔렸다. 조씨는 외아들이 대학생이 됐을 때 태백산맥을 원고지에 베끼라는 숙제를 내줬다. 태백산맥의 원고지를 쌓아놓으면 조씨의 키를 넘는다. 4년 전 시집온 며느리도 시아버지의 명을 받아 태백산맥 베끼는 작업을 하고 있다. 조씨는 얼마가 됐건 아버지가 행한 지적 노동의 대가를 상속받으려면 아버지가 어떤 창작의 고통을 겪었는지를 1000분의 1이라도 알게 하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에서 저작권은 저자의 사후에 50년 동안 보호된다. 사후 50년이라는 기간도 길다는 느낌을 주는데 미국에서는 1998년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자의 사후 7095년으로 늘리는 법안이 통과됐고 이번에 대법원에서 7 대 2로 합헌 판결을 받아냈다. 월트디즈니의 만화 미키마우스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예술작품이 이 혜택을 받게 됐다. 미국 의회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지난 40년 동안 11차례 늘려주었다. 1970년 저작권법 최초 시행 때만 해도 사후 14년에 추가로 14년을 연장할 수 있었을 뿐이다.

저작권(Copyright) 보호가 학문과 예술의 진보를 가로막는다며 저작권 공유 운동(Copyleft)을 하는 사람들은 20년 후쯤이면 의회가 저작권 보호 기간을 더 늘려줄 것이라고 비판한다. 저작권을 무한정 늘려주는 입법 로비의 배후에는 디즈니 같은 미디어기업, 영화협회, 음반회사 그리고 사망한 저작자의 유족들이 있다. 소수의견을 낸 스티븐 브레이어 판사는 20년 동안 연장된 저작권료는 책 영화 CD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항공사가 192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를 객실에서 상영하기 위해 값비싼 저작권료를 내게 되면 비행기표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에서 합헌 판결을 받은 저작권 연장의 혜택은 창작의 산고를 치른 저작자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한 손자에게 돌아가거나 디즈니 같은 거대 기업을 더 살찌게 한다. 미국의 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바뀌어 전 세계에 파급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저작권 보호 기간을 저자의 사후 70년으로 늘리자는 논의가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할아버지의 저작물을 베껴본 일도 없는 손자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예술 애호가들의 주머니를 무한정 터는 일이 과연 사리에 합당한지는 모르겠지만.

황 호 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