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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인들 전시 비상탈출 연습보니

Posted January. 05, 2017 07:13,   

Updated January. 05, 2017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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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말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 기지의 후송 통제 센터 앞. 주한미군 가족을 비롯한 미국인 60여 명이 두꺼운 점퍼에 털모자를 눌러쓴 채 신속하게 모였다. 여행배낭을 짊어지거나 캐리어를 질질 끄는 이들은 얼핏 보기에 캠핑 가는 관광객 같았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은 흰 마스크를 썼고 어른들 대부분은 표정이 굳어 있었다. 한국에 전쟁이 터졌을 때 비상 탈출을 하는 ‘비전투원 소개(疏開) 훈련’ 참석자들이었다.

 미국 CNN은 지난해 11월 초까지 실시된 당시 훈련을 단독 동행 취재해 3일(현지 시간) ‘김정은으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다. 해마다 실시하는 훈련이지만미군 헬기를 동원해 민간인을 일본 오키나와까지 대피시킨 것은 2010년 이후 7년 만이다. 그만큼 북한 핵 미사일 프로그램 진전에 대한 미국인들의 우려와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CNN이 동행 취재를 완료한 지 2개월이 지난 이날 공개한 것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통해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이를 깎아내리는 등 북한과 미국의 긴장이 첨예해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비전투원 피란 계획 담당자 저스틴 스턴 씨는 CNN에 “김정은의 신년사는 우리를 적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에서 심각한 발언이 나오니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군의 가상 탈출 소집을 받은 미국인들은 대부분 미리 싸둔 짐을 챙겨 나왔다. 개인 물품은 1인당 약 27.2kg씩으로 제한됐다. 훈련에 참여한 니콜 마르티네스 씨는 “미군이 군무원 가족들에게 항상 통조림 음식과 슬리핑백 등을 담은 여행가방을 싸 두라고 권한다. 우리도 집에 비상용 가방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용산 미군기지 통제소에서 팔찌형 신분증을 나눠 받았다. 보안 검색을 거칠 때 애완동물도 등록을 해야 했다. 어린 학생들은 유아용 화학작용제 방지 마스크를 착용하는 교육도 받았다. 일부에서 “탈출을 빨리 해야 하는데 절차가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이 나오자 랜스 캘버트 사령관은 “전시에는 수만 명의 민간인을 5∼7일 사이 탈출시켜야 하니 기차, 버스 등 민간 교통수단을 활용해 더 빨리 대피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피란민들은 버스를 타고 경기 평택시 남부의 캠프 험프리스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아스팔트 위에 대기하고 있는 치누크 헬기의 위엄한 모습에 얼떨떨해 했다. 헬기에 오르는 순간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라고 군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지미 시핸 대위는 “이 훈련은 민간인에게 좋은 실습 기회이기도 하지만 군인들이 정신력을 붙드는 훈련을 하는 계기다. 군인이 마지막 순간에 ‘내 아내, 내 남편은 어딨나’ 생각해선 곤란하다”고 전했다.

 상륙한 치누크 헬기는 대구에 착륙했다. 헬기에서 내린 피란민들은 캠프 워커 미군기지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오전 5시가 되자 호송대는 이들을 김해공항 대한민국 육군기지로 보냈다. 미국인들은 이곳에서 미 육군 C-130 헤라클레스 수송기를 타고 드디어 한국 땅을 떠났다. 수송기 안에서 사람들은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서로 기대어 잠이 들었다. 눈을 뜰 무렵 수송기는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닿았다. 훈련을 마친 뒤 이들은 한국으로 되돌아왔지만 전쟁 중에는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조은아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