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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 이후 숨죽인 마르틴 루터, 개혁의 칼을 갈다

파문 이후 숨죽인 마르틴 루터, 개혁의 칼을 갈다

Posted November. 26, 2016 07:20,   

Updated November. 26, 201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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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 5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있다. 독일의 평범한 수도사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 판매를 비롯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에 맞서 1517년 10월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루터의 밧모섬’은 루터의 극적인 개혁의 장면들을 펼쳐 보이지 않는다. 이 논픽션이 집중하는 때는 루터가 독일 아이제나흐 인근의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있던 1521년 4월부터 1522년 3월까지다. 파문 칙서를 받은 루터가 보름스 국회에서 입장을 밝힌 뒤다.

 제목의 ‘밧모섬’은 사도 요한이 로마 황제의 박해로 인해 유배됐던 곳이다. 요한계시록이 쓰인 장소이기도 하다. 자신이 은신한 바르트부르크 성을 ‘나의 밧모섬’으로 부른 루터는 이곳에서 자신이 속한 종교의 기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연회를 열고 호화로운 교회를 세우는 데 거금을 펑펑 썼고 돈으로 성직을 거래하던 때에 루터는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저자는 이 시기 루터가 고립과 고독에 시달리고 신념도 흔들렸다는 사실을 진솔하게 기술했다. 이 시기는 루터의 생애에서 전혀 움직임이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가 보기엔 가장 창조적인 시간이다. 루터는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종교개혁의 방향에 대해 고민했고, 편지와 강론집, 논문 등 다양한 글을 쉼 없이 썼으며, 독일 민중들을 위해 성경을 번역했다. 이 큰 밑거름과 함께 이후 펼쳐지는 종교개혁은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에 변화와 개혁의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지금도 의미가 유효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