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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시 광화문 시대로
동아일보는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1일
새벽을 광화문에서 맞았다. 7년 전 충정로 사옥에 둥지를 틀면서 “우리는 광화문으로 돌아가리라.”고
다짐했던 그대로 동아일보는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온 것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한 세기동안 한국 현대사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우리 선배들이 일군 20세기의 이 자랑스러운 업적을 21세기에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식정보화, 문화, 환경 등 21세기의 새로운 아젠다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지면에 역동적으로
반영해야 합니다.… 우리는 창간정신과 사시의 계승발전을 통해 국내 정상신문의 자리를 더욱 튼튼히
하고 궁극적으로는 21세기 동아시아 최고의 미디어그룹으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김병관 회장
신년사)
일제의 온갖 억압과 박해에도 굴복하지 않고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곳도 광화문이고 광복 후 줄기찬
반독재 투쟁의 진원지도 바로 광화문이었다. 광화문이야말로 동아일보의 정신적 거점인 것이다. 일제가
영구히 한반도를 지배할 목적으로 조선총독부 청사(전 중앙국립박물관)를 짓자 “총독부를 감시해야
한다.”는 인촌의 뜻에 따라 총독부 건물이 빤히 보이는 곳에 터를 잡은 것이 광화문 구사옥이다.
광화문 구사옥은 일제강점하 우리 민족의 참상과 광복의 환희, 6·25전쟁의 비극, 4·19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등 굴곡으로 얼룩진 현대사를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항일과 독립·반독재 투쟁
및 민주화 정착의 거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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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돌아와 맞은 광화문시대는 그동안 비축한 에너지를 분출해 새 천년, 새 세기에 걸맞게 동아일보의
좌표를 새로 세우고 또 키워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광화문은 우리의 근·현대사를 통틀어 언제나 그 움직임의 한가운데 있었다. 나라 잃고 암울하던 시절에
혁명적인 뉴미디어였던 신문이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당시 고난 속에서 민족을 이끄는 겨레의 등불을
자임했던 동아일보는 이제 제2의 도약에 나서고 있다. 동아미디어센터는 바로 21세기 동아일보를 이끌어갈
비전이며 초석인 것이다.
광화문 구사옥 바로 옆에 우뚝 솟은 동아미디어센터는 21세기를 상징하는 지상 21층에 지하 5층
연면적 7000여 평 규모의 초현대식 건물이다. 대우건설이 맡아 97년 5월7일 착공해 32개월
만인 99년 12월30일 완공, 그 웅장하고도 독특한 위용을 드러냈다.
최첨단 정보통신 시설을 두루 갖춘 이 초현대식 인텔리전트 빌딩은 21세기 뉴미디어와 정보통신의 미래,
사이버 문화의 환상적 세계를 전하는 정보문화의 메카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또한 전자신문, 인터넷,
가상현실 등을 한눈에 조망하면서 모든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21세기형 정보문화 광장이기도 하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재료로 외벽을 두른 것은 동아일보의 투명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함이고
원형과 수직적 상승감을 통해 진취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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