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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식 방북
98년 8월31일 아침. 백두산 봉우리 너머로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그러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터져나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장엄한 백두산의 일출을 대하는 순간 모두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 노래가 나왔다.
김재호 이사대우, 최규철 편집국 부국장, 이동관 정치부 기자, 석동률 사진부 기자, 그리고 소설가
이호철. 이들은 목청껏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동아일보 제1차 방북 대표단이었다.
“불신과 대결 일변도의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동아일보가 민족적 대의에 입각해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 데 앞장서야 한다.”
김병관 회장은 94년부터 이렇게 말해왔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 민족이 남북으로 갈려 여전히 반목과 대결을 거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동아일보는 이때부터 방북취재를 추진해왔다. 그리고 98년 2월 북경의 아태(亞太)평화위원회 채널을
통해 북측에 방북할 뜻이 있음을 정식으로 전달했다. 여러 차례의 사전접촉이 내밀하게 이뤄진 끝에
마침내 북한당국이 방북 환영의사를 알려왔다. 이 해에는 국내 여러 언론사의 북한 방문이 잇따랐지만
북한이 신문사 이름을 명시해 공식초청한 것은 동아일보가 처음이었다.
1차 방북단은 98년 8월27일 북경을
거쳐 평양의 순안비행장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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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2차 대표단의 방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하면서 백두산과 천지 일대를 집중 탐사하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취재했다. 백두산 일출광경을
북한쪽 정상에서 촬영한 것은 남한 언론사 가운데 동아일보가 처음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내
신문에 소개된 백두산 일출광경은 중국쪽 정상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1차 방북단은 98년 8월27일 북경을 거쳐 평양의 순안비행장에 내렸다. 이들은 2차 대표단의
방북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하면서 백두산과 천지 일대를 집중 탐사하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취재했다. 백두산 일출광경을 북한쪽 정상에서 촬영한 것은 남한 언론사 가운데 동아일보가 처음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국내 신문에 소개된 백두산 일출광경은 중국쪽 정상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천지 주변의 변화무쌍한 기상 때문에 백두산 일출은
북한 사진작가들도 잡기가 어렵다. 그러나 석동률 기자는 이날 새벽 일출뿐 아니라 천지 주변의
장관까지 남김없이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운이 좋았다. 이 일출장면은 9월4일 동아일보
1면에 컬러사진으로 실렸다. 1차 방북단이 취재한 내용은 9월8일부터 5회에 걸쳐 연재됐다.
동아일보 방북단을 맞은 북측 사람들의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동아일보의 방북을 성사시키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한 북측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 남측 기자들이 온다는 데 대해 반대도
많았다. 민족지 동아일보의 방북취재는 지금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큰 ‘사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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