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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도 지원의사를 밝혔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95년 환경의 날(6월5일)을 앞두고 “우리는 그린스카우트 운동이 지향하는 목표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굳게 연대하기로 했다. 앞으로 각 회원국에 그린스카우트 운동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전해주고 이
운동의 발전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독려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왔다.
UNEP는 또 95년도 세계 환경의 날 기념포스터 한국판에 그린스카우트 상징마크를 ‘환경의 날’
및 ‘UNEP’ 상징도안과 함께 넣어 보급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그린스카우트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환경운동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준 셈이다.
그린스카우트는 97년 그린패밀리와 녹색소년단으로 새로 태어난다. 환경보전의식을 더욱 확산시키고
국제적인 환경운동단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성인조직은 그린패밀리로, 청소년조직은 녹색소년단으로
재편됐다.
그린스카우트는 가정에서 시작한 환경운동을 직장과 사회로 전파해 범국민적 운동을 통한 그린 소사이어티(Green
Society·환경사회)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다시 말해 그린스카우트 운동은 청소년만의
환경운동이 아니다. 개인에서 가정, 가정에서 학교, 학교에서 사회, 사회에서 범국민적·범세계적으로
확산해 지구의 자연을 찾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는다.
그린스카우트가 출범하기 전까지 환경운동은 오염행위에 대한 감시와 고발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고발당해도 벌금만 물면 그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투철한
환경의식으로 무장한 시민들이 스스로 실천하면서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만이 계속되는 환경훼손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시커멓던 서울 탄천에 물고기가 돌아왔다고 한다등산로 구석구석 널려 있던 담배 꽁초도 많이 사라졌다.
전에는 남의 일처럼 고개를 돌리던 사람들도 지금은 눈에 불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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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갈 길은 멀다. 그래도 이제는 푸른 강,
푸른 산을 가꿔야 한다는 사실만은 다들 알고 있다. 그린스카우트 운동이 인식을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5. 2002 월드컵
꿈의 구연(球宴). 월드컵 축구를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하는 수식어다. 그만큼 월드컵 축구의
인기는 어떤 스포츠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높다. 1930년 첫 대회가 열린 월드컵축구는 2차
세계대전 기간을 제외하고는 4년마다 어김없이 지구촌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당초 축구에서만
사용하던 월드컵을 지금은 스키, 스피드스케이팅, 하키, 골프, 육상 등 각 종목에서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을 봐도 월드컵 축구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가 확정된 것이 96년 6월1일. 일본보다 3년 가량
늦은 93년에야 대회유치에 나선 한국은 절대열세라는 예상을 깨고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동아일보는
한일 공동개최가 확정된 이튿날인 6월2일과 3일 연세대 최정호교수와 일본 논픽션 작가인 이시카와
요시미의 특별기고를 잇달아 실었다. 또 8월16일엔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유치기념
국민축제를 후원했다.
공동개최 확정 3개월 남짓 만인 9월25일 일본 도쿄 아사히신문 본사에서 동아일보의 오명(吳明)
사장과 아사히신문의 마쓰시타 무네유키(松下宗之) 사장이 합의서를 교환했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는 21세기를 맞는 양국이 새로운 우호관계를 열어갈 역사적인 일로 이를 환영하며 대회성공을
간절히 바란다.… 두 나라를 대표하는 언론기관으로서 지면 공동제작을 비롯해 문화·스포츠 교류,
여론조사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협력해 나간다.’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2002 공동위원회를
설치하는 자리였다. 2002 공동위원회는 한일 양국이 월드컵과 관련해 민간차원에서 처음 구성한
협력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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