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시대 이끈 문화사업 > Ⅱ. 세계화, 그리고 대중화 > 2. 서울올림픽 page1
 

2. 서울올림픽

88년 서울올림픽은 유치과정에는 그다지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올림픽을 정권유지의 방패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앞섰다. 경기를 제대로 치르지 못하리라는 우려도 팽배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북한과 쿠바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들까지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대회를 치러 역대 올림픽 가운데 최고의 대회라는 찬사를 받았다.
서울올림픽은 12년 만에 다시 열리는 진정한 올림픽이라는 점에서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서방진영이 대거 불참했고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는 공산권이 안전문제를 이유로 불참했는데 이는 사실상 모스크바대회에 서방국이 불참한 것에 대한 보복차원이었다. 결국 세계는 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반쪽 올림픽에 종지부를 찍고 서울에서 다시 손을 맞잡은 것이다.
160개 출전국에 참가선수단이 1만3626명에 이른 88올림픽은 한국의 위상과 역량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서울올림픽 이전까지 하계올림픽을 개최해본 나라는 불과 15개국, 아시아에서는 64년 도쿄올림픽을 개최한 일본뿐이었다. 따라서 이제 겨우 중진국의 말미에 끼여든데다 분단국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는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세계를 놀라게 할 만했다.
동아일보는 ‘단군 이래 최대 행사’라는 서울올림픽을 맞아 입체적인 보도전략을 수립하고 지면을 제작했다. 우선 올림픽 기간 내내 매일 8면을 증면해 모두 24면을 발행했고 추석인 9월25일자를 제외하고는 일요일에도 신문을 찍어냈다.
편집국은 각부 데스크들로 올림픽 기획단을 만들고 편집국 전체를 망라해 올림픽취재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서울올림픽을 보는 세계의 시각을 매일 싣는 등 서울올림픽을 세계의 올림픽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했다.

 

미국의 저명한 시사만화가 래넌 루리의 ‘루리가 그리는 서울올림픽’도 대회 개막일인 9월17일부터 연재했다. 그의 독특한 화필로 생생하게 묘사된 서울올림픽 만평은 특약사인 미국 ‘카툰뉴스 인터내셔널’사를 통해 전세계 계약사에 동시 공급됐다.
광화문 사옥의 대형 전광판도 9월18일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가로 6.6m 세로 4.4m에 최첨단 컴퓨터 설비를 갖춘 이 대형 뉴스속보 전광판은 1만240개의 마그네틱 화면표출 소자로 구성돼 직사광선 아래서도 문자와 숫자, 그래프를 선명하게 표출해내는 최신 장비였다. 또 사옥 정문 앞에는 45인치짜리 대형 TV가 설치돼 올림픽 경기를 하루종일 생중계했다.

세계적 특종 ‘벤 존슨 약물복용’

캐나다 육상스타 벤 존슨의 약물복용사건은 동아일보가 캐낸 세계적인 특종이다. 존슨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를 가리는 남자육상 100m에서 9초79의 세계 신기록으로 미국의 칼 루이스를 누르고 서울올림픽의 영웅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 같은 달음박질이 약물 덕일 줄이야.
존슨의 약물복용 사실이 처음 동아일보 취재팀의 촉각에 걸린 것은 그가 우승한 이튿날인 9월26일. 약물검사 권위자인 J박사가 평소 절친한 사이였던 최수묵 기자에게 던진 한마디가 결정적인 단서였다.
그는 “육상에서 한 건 터졌다.”고만 했을 뿐 그 선수가 누구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여기서 최기자가 기지를 발휘했다. “빨리 핀 단풍이 일찍 지는 겁니까.”단풍잎을 국기에 사용하는 나라는 캐나다뿐이다. 존슨은 바로 그 단풍잎을 가슴에 달고 우승한 선수다. J박사의 대답이 나오기까지 2, 3초. 최기자는 가슴이 탔다. “그렇다.” 드디어 짤막한 대답이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세계를 뒤흔든 대 특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Copyright 2000 동아닷컴. E-mail : newsro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