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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족혼 살리기

미래의 영재를 기르는 육영기금 ‘동아 꿈나무’는 현암(玄岩) 오달곤(吳達坤)선생이 첫 묘목을 심은 이래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 육영사업으로 성장했다.
제주도 서귀포 농장에서 감귤을 가꾸던 오씨는 71년 3월 어느날 동아일보사를 찾아와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이 되는 2020년부터 가난한 영재들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써달라.”며 100만 원을 내놓았다. 당시 대학 졸업자의 초임이 2만∼3만 원이었으니 적은 돈이 아니었다. 오씨는 그 뒤에도 모두 8차례에 걸쳐 1400여 만 원을 맡겼고 85년 세상을 떠난 뒤엔 선친의 뜻을 이어 외아들 운봉(雲峰)씨가 두 차례에 걸쳐 500만 원을 보내왔다. 이들 부자가 기탁한 장학금은 이자가 쌓이면서 2억7000여 만 원으로 늘어났다. 85년 6월 재단으로 발족한 ‘동아 꿈나무’의 성금은 최근 40억 원을 넘어섰다.
86년 안동 권씨 화천군파 종친회장인 권희종(權凞宗) 씨가 희사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토지 7423평(당시 감정가 23억 원)을 합치면 지금까지 모인 기금은 63억여 원에 이른다. 권씨가 쾌척한 토지는 그의 17대조인 화천군(花川君) 권감(權)이 성종(成宗)으로부터 하사받아 500년 동안 대를 물려온 것이다. 동아일보사도 75년 광고탄압을 받을 때 국민들이 보내준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85년부터 지금까지 5억 원을 출연했다.
동아꿈나무 재단에 장학금을 기탁한 독지가는 단체를 포함해 모두 200여 명. 10회 이상 기탁한 독지가만 11명에 이르고 두 번 이상 기탁한 사람도 55명이나 된다. 90년부터 매달 성금을 보내온 김윤철(金潤哲) 씨가 최다횟수 기탁자다. 이렇게 마련한 기금으로 매년 수백 명의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나라꽃 무궁화 선양운동’은 85년에 시작했다.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 무궁화는 애국가 태극기와 함께 일제 36년 동안 모진 수난을 겪었다. 동아일보가 이 운동을 펼치게 된 동기는 광복 40년째로 접어들었는데도 무궁화가 아직 나라꽃다운 아낌도,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동아일보와 인촌기념회가 함께 나선 ‘나라꽃 무궁화 선양운동’은 더 좋은 품종을 개발하자는 육종사업, 국민의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계몽활동, 많이 심고 잘 가꾸자는 보급운동 등 세 갈래로 전개돼왔다.

“무궁화를 키우자”

무궁화는 동아일보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창간사 ‘주지를 선명하노라’는 ‘동방아세아 무궁화 동산 속의 2000만 조선민중은 일대광명을 견(見)하도다.’라고 밝혀 창간정신이 무궁화 동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선언했다.
또 1923년 8월18일자 사회면 머리에 ‘비 갠 아침에 새로 단장한 무궁화’라는 제목으로 만개한 무궁화 사진을 실었고 26년 8월엔 ‘무궁화는 잘도 핀다’, 31년 8월26일자엔 ‘날마다 새 꽃을 피우는 무궁화’, 35년 8월30일자엔 ‘사는 데 애착심을 가진 무궁화’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을 싣는 등 무궁화 선양의식을 꾸준히 북돋워왔다.
98년 1월 전면 가로쓰기로 바뀌기 전까지는 동아일보 제호를 무궁화가 감싸고 있었다. 제호 바탕의 한반도와 무궁화 그림은 창간 10년째인 1930년 신년호에 처음 등장했다.
일제하에서 독립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무궁화 그림은 1938년 2월 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삭제됐다가 해방과 함께 복간호부터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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