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댕기머리 정구대회
1923년 6월30일, 서울의 경성제1여고(현 경기여고) 운동장에 2만여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모두 여자들과 나이든 남자뿐, 젊은 남성들은 보이지 않았다. 젊은 남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호기심에 찬 이들은 학교담장 위로 촘촘히 머리를 내밀고 있었고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 근처 나무 위에도 매달려 있었다. 나뭇가지가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지면 매달려 있던
사람들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비명과 폭소가 터져나왔다.
제1회 전국(全朝鮮)여자연식정구대회가 열린 날. 당시만 해도 남녀가 유별이고 여자들의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던 때라 다 큰 여학생들이 라켓을 들고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코트를 누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대회 불가(不可)’ 여론이 워낙 거세자 주최측은 ‘젊은 남성의 입장을
불허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그제야 겨우 대회를 열 수 있었다.
동아일보가 주최한 대회였다. ‘남자의 반성을 촉구하고 직업의 기회균등을 주장하기 위해서…’ 동아일보가
실로 파격적으로, 그러나 한 세기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고 대회를 마련했던 것이다.
출전팀은 서울의 숙명·정신·동덕·배화·진명, 개성의 호수돈, 공주의 영명여고 등 7개팀으로 각
학교는 5개 조 10명씩의 선수를 출전시켰다. 선수들은 길게 땋은 댕기머리에 리본을 매고 유니폼은
치맛자락이 무릎을 덮는 길이에 윗도리도 긴 소매차림이었다. 또 맨살이 드러나지 않게 흰 양말로
다리를 가리는 등 중무장을 했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서구식 스포츠는 1897년 인천에 들어온 영국 함선이 퍼뜨린 축구가 처음이었고
이후 야구, 농구, 육상, 정구 등이 차례로 보급되면서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선수들은 남자 일색이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국여자정구대회는 동아일보가 주최한 가장 오래된 사업이자 국내 스포츠를 통틀어
|
|
최장수
대회이기도 하다. 첫 대회가 열릴 당시는 유교적 전통이 굳어져 있었기에 이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의
차원을 넘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대회가 열린 날 동아일보에 실린 사설을
원문 그대로 보자.
…深幽의 閨中에서 新自覺의 憧憬이 날로 促進하는 現下 朝鮮의 여러 가지 現象은 어찌 時勢變遷의 反映이
아니고 무엇인가? 吾人은 이 점에 있어 朝鮮 장래의 新女子界에 嚮導의 重任이 有한 一般女學生의 自重을
切望하는 바이어니와 먼저 모든 方面의 活動基礎가 될 體育의 修養에 深刻한 留意를 促하고 朝鮮 女子
初有의 運動이 今日에 開始된 것을 特筆하노라. 여권이 신장하는 계기가 된 여자연식정구의 예에서 보듯이
동아일보는 시대의 흐름을 앞서가는 통찰력과 선구자적 위치에서 각종 문화사업을 펼쳐왔다. 광복 전에는
민족의식 고양과 여권신장, 독립에 무게를 두었고 광복 후에는 민주화와 통일, 삶의 질을 높이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문학신인 등용문 신춘문예
동아일보는 일제 암흑기인 1925년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문학 신인들의 등용문인 신춘문예를
시작한 이래 소설 부문에서 36년 김동리(金東里), 61년 홍성원(洪盛原), 72년 한수산(韓水山),
79년 이문열(李文烈) 등 해마다 ‘숨은 진주’들을 발굴해냈다.
시 부문에서도 미완의 대기(大器)들이 잇따라 동아일보를 통해 등단해 찬란한 감성을 열었다. 1980년
이후만 해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등에서 세기말의 절망적 허무를 그려낸 시인 겸 평론가 남진우(81년),
‘연어’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등으로 김소월의 전통적 서정을 이은 안도현(84년),
단 한 권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으로 한국시단에 돌풍을 일으켰던 요절시인 기형도(85년)
등이 모두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