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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6월항쟁의 선두에 서서
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 군 추모행사를 둘러싸고 재야세력과
정부 공권력의 대결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던 1987년 4월13일, 전두환 대통령은 폭탄선언을
했다. 야당과 벌여오던 개헌협상을 백지화하고 기존 간선제 헌법대로 대통령 선거를 실시한다는 호헌회귀(護憲回歸)
발표였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민심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중에 나온 ‘4·13 특별담화’는
들끓는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1년 전 개헌논의가 재개되면서 트인 언로(言路)는 다시
막혔고 정치적 민주화에 걸었던 국민의 기대도 싸늘하게 식었다.
이런 마당에 박군 고문치사 사건이 경찰 고위간부들에 의해 축소 은폐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5월22일과
23일 연달아 동아일보사 지면에 폭로됐다. 야당과 재야단체는 즉각 ‘박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6월10일 전국규모의 규탄대회를 개최한다.”고 선포했다.
민주화의 거대한 물결을 몰고 온 6월항쟁의 시발이었다. 동아일보가 그 새벽을 여는 데 일조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6월 항쟁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5월25일 동아일보사 기자들이 채택한 성명 ‘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주장’을 보자. 편집국과 출판국 기자 132명이 서명한 이 성명은 정부의 언론통제
철폐 및 언론자유의 회복과 ‘말’지(誌)의 ‘보도지침’ 보도로 구속된 전·현직 언론인 3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공정보도를 다짐하는 내용이다.
다음은 그 전문. 우리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 등 연이은 공권력 남용과
형제복지원 사건, 범양상선 외화도피 사건 등 파행적 사건이 잇따르면서 국민들의 팽배된 불안감과
의구심이 급기야는 박군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기도 폭로 이후 정부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감으로까지
비화하고 있음에 주목,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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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및 국가권력에 대한 이와 같은 국민적
불신은 나라의 주인이자 국가 주요정책의 당당한 선택자여야 할 국민들이 자유로운 의사표시는커녕 온갖
유무형의 기본권 제약으로 고통받으며 진정한 민주화와 정권교체 등 더 나은 장래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없는 현 정치상황에 기인한다고 우리는 단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점차 허무주의화하고 있는 국민적 분위기가 더 이상 패배주의로 치닫고 최악의 경우에는
모험적 경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서라도 개헌논의의 조속한 재개 및 완료와 그에 근거한
민주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한다.
―민주화를 위한 현행헌법 개정은 국민적 합의이며, 국민적 여망인 민주화는 더 이상 지체될 수 없고
정략적 도구로 이용될 수도 없는 이 시대의 최우선 과제다.
개헌논의 자체를 일방적으로 중단케 한 ‘4·13 특별담화’는 국민적 합의에 대한 배신이므로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4·13담화의 철회 없는 민주화 주장은 허구이며 우리는 4·13담화의 철회만이 국민적 합의인 개헌
및 민주화 실천의 새 출발점이 된다고 믿는다.
―오늘날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유언론의 회복을 민주화의 최선결 요체로 손꼽고 있으며 또 ‘신문과 방송은
있으나 언론은 없다.’는 지적이나, 심지어 관·언 복합체, 제도언론 등의 질타가 있음을 우리는 부끄럽게
여기고 자성한다. 현 언론상황을 볼 때 이른바 언론 자유가 전국민적 관심사가 되어 있는 현실에도
정부는 보도지침, 기관원의 언론사 출입, 기사 삭제, 발매중지 위협 등 명백한 제작 간섭과 언론통제를
계속하고 있으며 심지어 취재기자에 대한 불법 감금 및 무차별 구타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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