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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더 맑게, 더 멀리

개국 1년 만에 청취율과 공신력, 영향력에서 정상에 오른 동아방송은 65년부터 70년까지 6년 동안 초창기에 보이던 미숙성을 극복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한다.
‘더 맑게, 더 멀리’는 개국 이래의 소원이었다. 10㎾라는 낮은 출력에 지방국 설치마저 여 의치 않은 상황에 당장 가능한 것은 잘 들리는 방송의 실현이었고 출력을 증강해 멀리 들리 도록 하는 것이었다. 더 맑게 들리는 방송을 위해서는 주파수를 변경해야 했다. 동아방송의 1230㎑는 일본 나가사키 방송의 주파수와 똑같았다. 주파수가 같으면 소리가 뒤엉키기 마련 이다. 나가사키 방송이 혼신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출력을 증강하는 바람에 동아방송의 혼신 상태는 갈수록 심해졌다.
3년 가까이 청취자와 친숙해진 주파수를 버리고 새 주파수로 옮긴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모험이다. 그런데도 동아방송은 66년 3월16일 체신부에 주파수 변경을 출원해 이 해 12월4일부터 790㎑로 바꾸었다. 청취율 1위라는 자신감이 없으면 꿈도 꾸지 못할 ‘도박’ 이었다.
주파수 변경으로 ‘맑은 방송’을 실현한 동아방송은 이어 ‘더 멀리’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동아방송은 개국 때부터 부산과 광주 지방국 설치를 출원했고 65년에는 FM 방송국, 67년에는 TV 방송국 설립허가원을 차례로 냈으나 당국은 그때마다 거부했다. 따라서 출력증강을 통해 가청권을 전국으로 늘리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선택이었다.
개국 5주년 기념일인 68년 4월25일 새벽 5시 마침내 50㎾의 강력하고 선명한 전파가 전국을 향해 송출되었다. 종전 가청권을 훨씬 넘어 경북 안동 대구와 제주 등에서 수신 보고가 쇄도했다. 심지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수신클럽, 호주의 수신서클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 세계 각처에서 ‘수신양호’ ‘프로그램 완전 청취’라는 보고서가 날아들었다. ‘맑은 방송, 멀리 들리는 방송’의 실현과 더불어 새 프로그램도 속속 등장했다. 1시간짜리 와이드물 종합생활정보 프로그램인 ‘동아 스코프’가 탄생했고 ‘동아 스코프’의 자매프 로그램인 ‘서울 패트롤’ ‘0시에 만난 사람’ 등도 잇따라 선을 보였다.
69년에 접어들면서 ‘격조 높은 민족의 방송’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사건 세계사’ ‘심야의 명상’ 등 중후한 프로그램이 등장했으며 이 해 4월 개편에서는 ‘한국독립투쟁 비화’ ‘모닝 쇼’ ‘젊은이의 행진’이 탄생한다. 뉴스 프로그램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굳힌 ‘뉴스 쇼’가 등장한 것도 이 해 10월 개편에서다.
동아방송 성장기 편성의 특징은 우선 뉴스와 보도 프로그램의 증가다. 뉴스는 개국 당시의 하루 13회에서 71년 18회로 늘었으며 보도 프로그램도 67년 4.1%로 급격히 증가했다.
두 번째는 사회교양 프로그램이 점점 줄면서 생활정보 프로그램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생활 정보 프로그램은 TV시대에 라디오가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산물로 ‘다이얼 1230’ ‘동 아 스코프’ ‘서울 패트롤’ ‘나는 모범운전사’ 등이 그 예였다.
‘닐리리도 흥겹게’
셋째는 다큐멘터리 드라마와 라디오 캠페인 확충이다. 동아방송 최초의 캠페인이 ‘걸어서 가자’였다면 두 번째는 우리 고유의 민속예술을 되찾고 이를 보급하자는 의도에서 방송된 ‘닐리리 보급운동’을 꼽을 수 있다.
65년 10월4일 15분짜리 프로그램 ‘닐리리도 흥겹게’로 시작된 ‘닐리리 보급 캠페인’은 67년 3월 폐지될 때까지 1000여 곡에 이르는 닐리리를 제작해 우리 고유 가락을 되찾고 대중가요에 새 지표를 정립하는 기념비적 업적을 남긴다.
‘닐리리’라는 단어는 독일의 리트, 프랑스의 샹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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