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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 한국인의 자유를
부르짖은 3·1운동을 계기로 1920년 4월1일 창간돼 민족의 대변지로 활약하게 됐다.
민족주의자이며 뒤에 한민당을 창당한 김성수 씨가 창간한 동아일보는 곧 권위주의적 지배자에 대한
투쟁의 선봉에 섰고 한국의 고유문화를 재현하는 데 앞장서왔다.
동아일보는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숱한 정간 폐간의 시련을 극복하며 꿋꿋하게 성장하고 있다. 오늘날
동아일보는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으며 발행부수 50만 부에 9개 지방판을 발간, 일본의 몇몇 신문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신문이다. 동아일보가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지주 노릇을 계속해온
데에는 평기자에서 출발해 현재 사장직에 있는 발행인 고재욱 씨의 공이 크다.
동아일보가 마닐라 크로니클과 같이 민족주의의 대변자를 자임하고 있는 까닭에 동아일보의 성공은
우리 마닐라 크로니클에도 특별한 의의를 갖는다. 동아일보의 창간 50주년 축전에 마닐라 크로니클은
동아일보를 아끼는 많은 독자들과 함께 이 신문의 계속적인 번영을 빌어 마지 않는다.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 치하에서 쓴 이 사설은 마닐라 크로니클과 똑같이 권력의 억압 속에 자유언론을
지키려는 동아일보에 대한 동지애로 가득하다. 이 날 한국일보와 조선일보도 동아일보 창간 50주년과
관련한 사설을 실었다. 한국일보는 ‘찬란한 기록은 동아일보만의 어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반세기를
신문과 함께 살아온 모든 언론인의 산 역사’라고 축하했다. 조선일보는 ‘동아가 50년의 전통을
자랑할 수 있고 또한 오늘 한국언론의 대표적 웅지(雄紙)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언제나 의연한 자세로 대중의 갈 길을 향도하면서 대중과 희로애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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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했기 때문’이라고 격려했다.
동아일보도 창간 50주년 기념사설에서 ‘민족·민주·문화의 반세기에서 본보의 창간전통과 3대 사시를
재음미하고 본보가 꼭 지켜야 할 자세를 다시 가다듬는다. 그것은 선인들이 난국에 처해서 시범한
그 밝은 지혜와 그 백절불굴했던 인내력과 그 불퇴전의 용기를 우리도 몸에 지녀서 민족·민주·문화의
강령을 70년대에 맞게 해석하고 이를 국민에게 주지시키는 데 매진하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음은 이 날 기념식전에서 처음으로 울려퍼진 창간 50주년 기념 동아일보 찬가(김광섭작사 김성태작곡)다.
아 영원한 민족의 얼 / 3·1정신 이어받아 사나운
비바람에도
민족의 길 밝힐 등불 슬기롭다 정의의 필봉 / 눌리고 밟혔건만 쓰러진 글자없이
겨레에 바친 충성 살아서 돌아와 / 자유와 같이 나라섰네 //
아 영광하라 동아의 얼 / 수난속에 반세기 세계로
뻗어간다
먼저 쳐다보이네 앞서가는 동아의 깃발 / 눌리고 밟혔건만 쓰러진 글자없이
겨레에 바친 충성 살아서 돌아와 / 자유와 같이 나라섰네
3. 10월 유신과 자유언론 실천운동
1972년, 나라 안팎은 엄청난 격변 속에 숨가쁘게 출렁였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2월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5월에는 소련으로 들어갔고 9월에는 일본과 중국이 국교를 맺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정세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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