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건국, 동란, 반독재 > 2. 전쟁과 반독재 > 4.4·19혁명의 견인차 page 1
 

우리가 36년 동안 자주독립을 몽매에도 잊지 못한 것도, 반공투쟁에 수백만이 그 생명을 제물로 바친 것도 이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한 것이지만 일당 독재를 내용으로 한 자주독립은 아니었다. 아무리 반석 위에 있는 자주독립일지라도 일당 독재를 내용으로 하는 한 그 나라 국민들에게는 우울한 자주독립이기 때문이다. 일당 독재하에서의 국민생활은 여하한 미사여구로 분장되건 간에 우리가 일정하에서 36년 동안 받아온 탄압보다 나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에 언론자유를 말살하는 조항이 삽입됨으로써 우리의 언론자유는 죽었다. 그러나 우리 3000만은 민주주의의 죽음을 슬퍼만 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데굴데굴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싸워서 획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죽은 민주주의지만 그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고만 있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자유를 버리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는 것을 깊이 깊이 새겨두어야 하겠다.

4. 4·19혁명의 견인차

보안법 파동의 여진 속에 어수선한 새해를 연 1959년 2월, 이승만은 대통령선거를 1년이나 앞둔 시점에 4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를 비판한 경향신문 기사를 문제삼아 경향신문 발행허가를 취소했다.
동아일보를 떠나 조선일보를 거쳐 경향신문 논설위원으로 있던 주요한이 쓴 단평난 ‘여적(餘滴)’의 신랄한 내용이 자유당정권으로 하여금 20만 부를 넘어선 제2의 야당지를 강제 폐간토록 한 것이다.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던 동아일보가 35만 부를, 한국일보와 조선일보가 각각 16만 부와 10만 부를 상회하는 등 주요 신문들의 사세가 확장돼 어느 정도 상업지로 자리잡아가던 시점이다. 취재현장에서는 기자 폭행이 일상사처럼 되풀이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념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었으나 이승만 정권은 집권 이래 줄곧 언론의 기본 자유조차 보장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기여한 보수 언론들조차 정부와 날카롭게 대립했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실제로는 전제정

 

치를 실시하는 이른바 ‘민주주의와 전제정치의 불편한 결합’을 제도화한 이승만 정권은 비단 좌파 세력의 근절뿐 아니라 보수적 반대 세력까지 침묵시키려는 의도를 감추고 있었음은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1960년 3월15일로 예정된 제4대 대통령선거가 다가왔다. 3월3일 민주당은 자유당 정권의 ‘선거방법지령’이란 비밀 문건을 폭로했다. 유령 선거인 명부를 작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총유권자 수의 40%를 사전 투표하고 유권자에 대한 감시 감독을 철저히 할 것 등을 담은 이 지령은 전국 공무원들에게 하달된 것이었다.
동아일보는 지방 특별취재를 통해 은밀히 진행중인 부정선거 준비작업 실태를 파악하고 3월6일부터 선거 전날까지 연일 집중 보도했다. 자유당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유령 편지 보내기, 대리 투표 연습, 협박 등등 불법선거 조짐은 도처에서 나타났고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졌다.
앞서 동아일보는 1월26일 서울역에서 발생한 귀성인파 압사사건을 뜻하지 않은 실수로 낙종(落種)해 뼈아픈 실패담 하나를 남기게 된다.
음력 설 전전날인 이 날 밤 10시45분. 서울발 목포행 완행열차를 타려는 승객 3900여 명이 한꺼번에 개찰구를 빠져나가 앞을 다투어 뛰기 시작하더니 플랫폼으로 내려서는 계단에서 연쇄적으로 넘어져 깔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망 30명, 부상 38명을 낸 이 참사는 발차 5분을 남기고 개찰하는 바람에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엄청난 인파가 한꺼번에 좁은 계단에 몰리면서 일어난 불상사였다.
당시 조석간을 발행하던 동아일보는 시간도 충분했는데 이 중대한 뉴스를 놓치고 말았다. 야근 기자가 서울역을 돌아보고 현장을 떠난 것이 사고 발생 5분 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평소에는 흔하던 시민 제보도 없었고, 퇴근 후 라디오를 통해 사고 보도를 들은 기자도 있었으나 야간 근무자가 으레 알고 있으리라 믿고 본사에 알리지 않았다. 야간 부국장과 숙직부장 등 내근자들도 공교롭게 라디오에서 보도하는 이 소식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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