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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립된 나라에서 첫 정간
발췌개헌 긴급통화조치 등 이승만 정권의 권력남용이
계속되는 가운데 53년 휴전협정이 조인됐다. 한때 광복으로 들떴던 한반도는 예상치 못한 전쟁의
참화를 겪고 분단이 굳어진 채 불안정한 평화를 맞았다. 정부 환도에 앞서 동아일보는 8월18일자를
마지막으로 2년8개월간의 부산 피란시대를 마무리했다.
서울 복귀와 동시에 동아일보는 19일 광화문 사옥에 입주했다. 1940년 8월 폐간 이후 13년
만이었다. 파괴된 건물과 시설을 정비하고 새로 도입한 윤전기로 인쇄능력을 갖추게 된 동아일보는
54년 시간당 5만 장을 인쇄할 수 있는 신형 윤전기 1대를 추가 도입, 발행부수 8만의 국내
최대 신문 자리를 유지했다.
그 즈음 정부와 언론의 갈등은 더욱 심해져 54년 10월 이승만대통령은 신문 발행부수가 10만은
넘어야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서울지역 신문사를 2, 3개로 축소 정비하라고
제안했다. 정리 방안으로는 신문 발행진의 합의 아래 폐간하거나 민간 지도자들이 협의해 선별,
혹은 일반 시민이 투표로 선별 등이 거론됐다. 이 제안은 언론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평지풍파만
일으키고 백지화했다. 획기적인 언론 정리가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이후 비판적인 언론을 가차없이
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다.
54년 11월 국무총리제 폐지와 대통령중임제를 골간으로 한 이른바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을
계기로 권력과 언론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독재 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야당 세력이 민주당(民主黨)으로
결집하는 사이에 인촌 김성수는 55년 2월18일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51년 부통령 재직 때 발병한 그의 병세가 차도 없이 계속 악화됐던 것이다.한때의 동지에서 정적(政敵)으로
변한 이승만 대통령은 김성수를 애도하는 추도 담화를 발표했다.
… 우리나라의 중망(衆望)을 지닌 지도자 한 분을 잃어서 민중과 정부가 다같이 애통한다.
…왜정 밑에서 압박이 극심했을 때 전 재산을 기울여서 교육사업을 시작했으며 한편으로는 신문을
내서 일정(日政)에 반대해왔으니 이것만으로도 그분이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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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4일. 김구, 이시영에 이어 정부수립 이후
세 번째 국민장으로 치러진 영결식 날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그는 희게 태어나서 희게 살다가
희게 돌아갔으니 그 깨끗한 영혼이 희게 영생할 것으로 믿는다.’고 썼다.
그가 운명하기 전, 동아일보는 그 해 신년호부터 조간 2면에서 4면으로 증면했고 2월1일부터는
김성환(金星煥)의 시사 연재만화 ‘고바우’를 등장시켰다. 그리고 그가 숨진 한 달 뒤인 3월17일
무기정간을 당하게 된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겪은 4차례의 무기정간 이후,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맞은 첫번째 무기정간이다.
‘괴뢰 고위층’ 오식 사건
피란지 부산에서부터 반독재 민주수호의 선봉에 서온
동아일보를 세간에서는 ‘야당지’ 혹은 ‘반정부 신문’으로 불렀다. 권력과 언론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신문은 정부에 비판적인 야당지와 정부를 두둔하는 여당지로 갈렸다.
야당지와 여당지는 정부에 대한 태도를 달리했을 뿐 아니라 정부와 언론의 관계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대립했다. 이런 가운데 동아일보가 기사 제목에 엉뚱한 오자를 내 정부에 탄압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 벌어졌다. 3월15일자 1면에 실린 한국과 미국의 석유협정 관련 기사의 ‘고위층 재가(裁可)
대기중 / 한미 석유협정’이란 제목 앞에 난데없이 ‘傀儡(괴뢰)’라는 단어가 인쇄된 사고였다.
같은 면에 들어 있는 다른 기사의 제목 ‘傀儡 휴전협정 위반을 美 중대시’에 쓰기 위해 미리
뽑아둔 한문 활자 ‘傀儡’를 정판공이 엉뚱하게 석유협정 기사에 붙여버린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로 제작하지만 당시에는 수작업으로 조판하던 형편이어서 활자를 잘못 꽂아 일어나는
이와 같은 오식(誤植) 사건은 전 언론사에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저 단순한 실수였는데도
정부는 가차없는 제재를 가했다.
전쟁중이던 50년 8월29일 대구매일신문이 1면 머리기사 본문에 ‘李大統領’을 ‘李犬統領’으로
잘못 인쇄하는 바람에 사장이 2개월간 구속된 뒤 신문에서 손을 뗐고 주간은 사임한 사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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