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건국, 동란, 반독재 > I. 광복과 건국 > 2. '3대 주지를 계승한다' page 1
 

‘특별 지원병제’라는 이름으로 일제가 학생들을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할 당시 유명 인사들을 학도병 지원 강연회에 연사로 동원한 직후의 일이다. 매일신보 기자가 김성수를 방문해 “다음은 선생님 차례”라며 제자들을 학병으로 보낸 학교장이 느끼는 ‘감격’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김성수가 글쓰기를 거부하자 기자가 물었다.
“조선의 청년들이 전장에 나가게 된 것은 현실 아닙니까?”

“그렇지요.”
“뒤에 남은 우리는 그들의 가족을 도와야 하지 않겠 습니까?”
“도와야지요.”
몇 마디 나눈 대화를 각색해 매일신보 지면을 장황하게 장식한 것이었다.

2. 3대 주지를 계승한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복간되지 못하고 있었다. 일제가 폐간 당시 아예 복간을 못하게끔 인쇄시설을 모두 강제 매수했기 때문에 새로 신문을 발간하려면 원점에서 시작해야 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서울의 인쇄 시설은 좌익이 거의 선점, 동아일보의 인쇄를 맡아줄 형편이 아니었다. 김성수와 송진우의 지시에 따라 설의식과 고재욱은 군정청과 교섭하는 한편 11월 중순부터 복간 준비작업으로 활자 주조에 들어갔다. 김구가 임시정부 요인들을 이끌고 중경에서 귀국한 11월23일 매일신보가 ‘서울신문’으로 이름이 바뀌어 발행되고 조선일보가 복간했다. 그리고 동아일보도 복간을 알리는 전단을 전국에 뿌렸다. ‘해방된 강산에 부활한 동아일보, 언론 진영에 곧 재진군’이란 제목이었다.
창간 이래로 민족의 면목을 고수하는 데 최후까지 노력을 다한 우리는 모욕과 박해로 일관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3000만 형제와 대면케 되는 오늘에 이르러 눈물이 쏟아지며 가슴이 찢어지는 충격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압력이 한꺼번에 없어짐에 따라 앞 뒤 두서가 없이 숱한 논의가 분분한지라 자칫하면 대의(大義)와 명분을 잃기가 쉽고 대도(大道)와 정론을 그르치기 쉬운 현 실정에 있어서 창간 이래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였던 동아일보의 재출발은 그 의의와 의무가 진실로 거대한 바 있음을 자인합니다.

 

민족통일정부 수립운동이 좀처럼 결실을 보지 못하고 난항을 거듭하고 있던 1945년 12월1일 동아일보는 다시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광복 3개월 반, 폐간된 지 5년4개월 만이었다.
사장 송진우, 주간 설의식에 편집국장 고재욱 체제로 재출범한 동아일보의 시설과 규모는 열악했다. 기자 25명으로 구성된 편집국은 한민당이 당사로 사용하는 광화문 사옥은 이용하지 못하고 옛 경성일보가 새롭게 탈바꿈한 ‘서울공인사(公印社)’ 사옥 한 구석을 빌려 쓰며 서울공인사의 도움을 받아 타블로이드판 2면 석간 신문을 겨우 제작하는 형편이었다. 6·25가 터질 때까지도 자체 인쇄시설을 갖추지 못한 동아일보는 판매망조차 정비되지 않아 주로 가두판매에 의존했다.
이 복간호에 주간 설의식이 쓴 중간사(重刊辭) ‘주지(主旨)를 선명(宣明)함’은 1920년 창간 당시의 3대 주지를 재확인하면서 이를 새로운 현실에서 재해석하고 있다(중간사 전문은 부록 참조).
우리는 창간 당초의 3대 주지를 그대로 계승함에 하등의 미흡함을 느끼지 않거니와 현 국면에 처한 우리의 주지를 구체적으로 부연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로 우리는 민족문화의 완성을 돕고자 한다. 둘째, 민주주의에 의한 여론정치를 지지한다. 셋째로 우리는 근로대중의 행복을 보장하는 사회정의의 구현을 기약한다. 넷째, 영토의 대소, 국력의 강약 등 차별을 초월한 국제 민주주의의 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

송진우 피살

동아일보가 복간호를 낸 직후인 45년 12월2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 영국 소련 3개국 외상(外相)회의는 해방 조선에 대한 미·영·중·소 4개국 신탁통치안을 채택했다. 이 소식이 서울에 입전된 28일을 기해 전국은 실망과 비분강개로 들끓었다. 29일 임정 계열은 신탁통치에 반대해 전국 규모로 총파업과 철시에 들어가기로 했다.
동아일보는 28일부터 연일 반탁(反託)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전국적인 반탁운동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28일의 사설은 신탁통치를 ‘민족의 수치’로 규정, 국민 총궐기를 강렬하게 호소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2월30일 아침, 송진우 사장이 원서동 자택에서 괴한의 흉탄을 맞고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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